어떻게 글을 써내려가야 할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첫 날의 기억을 천천히 곱씹어보며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장소만 그대로일 뿐,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내 자리도 바뀌었고, 관심사도 달라졌으며 그대로인 것은 껍데기뿐이지만 같은 계절을 두 번 지나온 결실을 이 글에 녹여내고 싶습니다. 순간에 충실하지 못해서, 아니면 때로는 너무 앞서나가서 가슴에 큰 가시를 품고 사는 날들이 쌓여갔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이럴까, 어떻게 해야할까 후회하고, 자책하고, 고뇌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분노로 물들여진 시간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래도 붉은 먹구름이 드리워질 때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걷히는 풍경들이 마치 누군가 두 손을 다정하게 내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저는 그 순간들이 기쁘고 보람찼습니다. 그러고 저 또한 기꺼이 밝은 존재가 되자는 그 다짐을 매일같이 입 안에 삼켰습니다. 실수의 빈틈에서 사랑이 흘러가고 있는 걸 확인하면서, 이건 오래 곁에 두고 싶은 감정이라고 말이죠.
겨울을 내뱉고 여름을 흘리며 지나온 시간들이 봄을 피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봄은 유유히 지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봄일지는 누구도 알려줄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그리워할 것이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른 계절을 온전히 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내일의 봄을 손꼽아 기다릴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글이 따뜻하고 청량하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서사에서 침묵을 깨우는 새로운 리듬이 울려퍼지길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