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사파 Day 8
단은 어제 8시 반에 잠들더니 안 골던 코도 골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푹 자고 있다. 어제부터 킨들로 me before you를 읽기 시작했다. 영화 트레일러를 보고 꼭 봐야지 하다가 책부터 보게 되었다. 주인공 여자애가 인디고 데님을 언급했는데, 앗! 우리 가이드 란이 설명해준 그거잖아? 어제 직접 본 걸 이렇게 책에서 언급하니 무척 반가웠다.
늘 국수만 먹었더니 질려서 오늘 아침은 팬케이크와 꿀. 느긋이 아침을 먹고 느긋이 오늘 트레킹을 시작했다. 란이 트레킹을 시작할 때 준 대나무 지팡이는 트레킹 하는 내내 도움이 되었다. 가파른 곳이 많아서 올라가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것이 힘들었다. 한 봉우리의 정상까지 올라가 벼들이 바람에 흔들려 물결을 만드는 것을 감상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제처럼 비가 오지 않아서 미끄럽지는 않았지만 보폭을 작게하여 조심히 내려갔다.
사파에는 약 3000명의 사람들이 사는데 아직도 조혼이 많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가 마음에 두는 여자를 납치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납치를 한 후 바로 합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3일 동안 남자의 여동생이나 사촌과 함께 지내면서 집안일을 거들고 농사일을 함께한다. 3일이 지나면 여자 형제의 옷을 주는데 납치된 여자는 거부권이 없이 그 옷을 자신의 옷과 바꿔 입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남자는 신부의 집으로 닭이며 쌀 등 여러 가지룰 가져다주고 결혼식을 하고 함께 산다. 요새는 납치하는 것은 금지되고 연애결혼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란은 아직 미혼인 30살 아가씨다. 이 마을 기준으로 보면 애가 5명 있어도 이상한 나이가 아닌데.. 머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 여행자들의 엉덩이에 진흙 자국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모두 한 번 씩은 꽈당 했구나. 사실 나도 어제 한번 엉덩방아를 찍었다. 앞에 가는 어떤 여자애 엉덩이가 진흙 범벅이길래 저것 좀 보라고 킬킬거리다가 말 한지 3초 만에 전혀 넘어질 곳이 아닌 것에서.. 이래서 사람은 마음을 곱게 써야 돼.
걷고 걷다가 드디어 점심 먹을 마을에 도착해서 맥주 두병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여행 다닐 때는 이렇게 마셔줘야 기운도 나고 신나지. 일본에서 만난 호주인 친구가 한 명언을 평생 못 잊을거다.
It is never too early for a beer when you travel.
사파는 경치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좋지만 길에서 만나는 여러 생물도 흥미롭다. 물소(길에 물소 똥은 정말 자주), 염소, 닭, 고양이, 강아지, 오리 등등 여러 동물들과 식물들. 란이 걸어 다니며 여러가지를 설명 해줬다. 그 중에는 먹으면 바로 즉사하는 독초도 있었고 마리화나도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마리화나 잎을 따서 여러 용도로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한 잎 들고만 가도 바로 철컹철컹할 텐데.
오늘 최종 목적지는 sa pan이라는 마을의 란의 사촌 집이었다. 아침 열시부터 걸어서 4시까지 총 11km를 걸었다. 도착했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잠시 후에 온다는 사촌은 2시간이 지나서 오고 그 이후에도 1시간 동안 집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다가 이건 좀 너무 한다 싶어서 란한테 왜 못 들어가는 거냐고 물어보니 샤먼 의식이 진행 중이라 해가 져야만 들어갈 수 있단다. 진작 말해줬으면... 사람이 한 가지가 마음에 거슬리니 그동안 생각했던 불만들이 하나둘씩 꿈틀거린다. 우리 가이드인데 왜 우리가 란을 여러 번 사람들이랑 말할 때 기다리고, 우리가 물건 들어주고, 우리 대화할 때 말 끊고.. 그래.. 그래도 좋은 사람이다..문화가 다르니까 이해해야지.
아 오늘 기억에 남는 것 하나 더. 어떤 서양인 커플이 길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이 더운 날 트레킹하며 긴 난방을 입다니 멀 모르는구만 하며 보다가 다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쪽 다리에 그레이 아니토미의 캘리가 참전 군인들한테 수술하던 그런 의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리로 언덕 길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데 대단하다는 생각과 저 사람의 사연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사파의 밥은 맛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