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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m Park Jul 17. 2016

#7. Backpack Honeymoon

베트남 사파 Day 7

푹 잤다. 4시쯤에 한번 깨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불편한 것 없이 괜찮았다. 예전 인도에서 30시간 기차를 탈 때도 그랬고, 태국에서 10시간 밤 배에서도 그렇고 나는 덜컹거리는 좁은 침대칸에서 잘도 잔다. 반면, 단은 담배 피우는 아저씨와 소음 때문에 거의 못 잤다고 한다. 단은 소리와 냄새에 무척 민감하다. 여행을 하기에 나만큼 적합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냄새도 잘 못 맡지, 음식은 다 맛있지, 더러운 거 잘 참지. 심지어 샤워를 오랫동안 못해도 찝찝한 줄 모른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능력인 것 같다.

기차역은 호객 행위를 하는 운전수들과 관광객들로 새벽 6시부터 북적이고 있었다. 우리는 단이 sapasisters라는 곳에 픽업과 트레킹 가이드를 모두 예약을 해 놓은 덕분에 단의 이름을 들고 있는 운전기사를 찾아 무사히 사파로 왔다. 사파는 베트남에서 가장 서늘한 고산지대로 중국과 국경이 거의 맞닿아 있는 곳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다락식으로 재배하는 쌀 농경지가 무척 아름답기 때문이다. 가파른 언덕과 같은 산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논과 구름은 정말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란이라는 여자분이 우리 가이드를 맡았다. 란은 네팔에서 입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의 수가 놓인 옷을 입은 볼이 발그레한 키가 작은 여성이었다. 첫인상은 나이가 한참 많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보다 3살 많은 언니였다. 오늘은 마을 2곳을 들리고 15km, 5시간 반 정도를 걷는다고 한다. 곧 있을 순례자의 길 준비운동이라며 단과 트레킹을 시작했다. 가져온 짐을 모두 들고 가는 게 아니라 2박 3일 동안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 짐은 사무실에 보관할 수 있어서 가볍게 나설 수 있었다. 시작할 때부터 전통의상을 입은 하몽 족 여자 2명이 소쿠리를 짊어지고 우리를 따라다녔다. 비가 조금씩 내려서 내려가는 길이 많이 미끄러웠는데 내리막길이 나올 때마다 한 여자분이 내 손목을 움켜지고 안 넘어지도록 도와줬다. 안 그래도 되는데 싶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도움을 받았고 나중에는 이 사람들이 가이드 도우미겠구나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점심을 먹으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알고 보니 수를 놓은 공예품을 팔 목적으로 같이 다닌 것이었다. 같이 걸어 다니며 도움받은 것이 있으니 거절도 못하고 반강제적으로 사게 되었다. 이게 관광지의 씁쓸한 단면이지. 사람이 좋아서 도와주는 줄 알았는데. (이 공예품은 나중에  파리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신세를 진 친구에게 선물로..)

사파에서는 5월쯤부터 벼를 심기 시작해서 9월에 한다. 그래서 7월과 8월이 가장 아름다워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곳곳에 벼뿐만아니라 콩, 옥수수, 옷감을 만드는 작물, 염색할 때 쓰는 아비고 등등이 자라고 있었다. 마리화나 잎도 종종 있었는데 신기해서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그닥 특별한 향기는 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담배가 마리화나보다 더 해롭다고도 하던데.

점심때 치킨 칼국수를 먹으며 맥주 한 잔을 먹고 노곤해진 마음으로 길을 마저 걸었다. 가이드와 함께 취향에 따라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단과 나는 너무 피곤하고 졸린 탓에 쉬운 평지 길을 선택했다. 약 2시간 정도 더 걸어 도착한 오늘의 홈스테이. 가족과 같이 지내는 가정집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호스텔처럼 꾸며진 곳에서 개인 방을 얻었다. 알고 보니 우리 가이드 란이 허니문이라고 따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을 잡아 준 거라고 한다. 마음 씀씀이가 참 예뻐서 고마웠다. 3시에 도착해서 6시까지 골아 떨어졌다. 일어나서 개운한 기분으로 경치 구경도 하고 홈스테이하는 집에서 맛있는 저녁도 대접받았다. 계속 더운 곳에만 있다가 바람이 선선한 곳에 오니 기분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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