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 호이안 Day 11
내가 왜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는지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 덕분이다. 중학교 때까지 늘 할머니랑 같이 방을 썼는데 우리 할머니는 늘 코를 아주 심하게 골고 이불을 잡아당기셨다. 약주를 한잔 한날에는 정도가 더 심했다. 일부러 소리를 내서 할머니를 살짝 깨우면 몇 분간 잠잠하다 다시 코를 골으셨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어떤 소음에도 잘 자는 인간으로 진화된 것이다. 고마운 울 할매 보고 싶다.
살아 계실 때는 왜 미운 점만 보였을까. 어렸을 때는 할머니를 껴안는 걸 가장 좋아했는데, 머리가 크고는 늘 툴툴거린 기억밖에 없다.
서류 작업이 드디어 끝나간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으면 진작 보냈을 텐데 캐나다로 가고 싶어 하는 엄청난 수의 한국인들 덕분에 건강검진 예약에 실패하고 이곳 다낭에 있는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검사는 아주 간단했다. x-ray, 소변 검사, 피검사, 의사와 간단한 인터뷰. 건강한 소가 된 기분으로 합격 판정받았다. 이제 이 medical check approval 만 동봉하고 보내면 된다! 작년에 혼인신고하고 바로 했으면 하는 후회가 있지만 지금이라도 했으니 다행인 거지.
근처에 유명하다는 반세오를 먹으러 갔다. 그런데 하필 장사를 안 하는 날이라 길을 걷다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캄툼?양념된 돼지고기, 계란, 밥위에 피쉬소스를 뿌려먹는 요리였다. 맛있다!
허겁지겁 배불리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호이안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단이 베트남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도시, 호이안.
숙소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해변으로 갔다. 어제 낮잠을 자다 다낭에서 물놀이를 못 해서 아쉬웠는데, 신난다. 오토바이로 아스팔트 위를 달릴 때 느껴지는 발가락의 간질간질함을 즐기며 온 바다는 아름다웠다. 해가 막 지려고 하는 시간이라 덥지도 않고 부산의 해운대처럼 사람이 미어터지지도 않았다. 단은 짐도 지켜야 하고 수영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혼자 찰박찰박 놀았다.
베트남의 하늘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 보다 구름이 한참 아래에 있는데 실제로 대류권이 낮은 건지 착시 현산인지 모르겠다. 하늘 구경을 하다 킴이 추천해준 곳에서 Cao lau를 먹었다. Cao lau는 호이안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인데 면을 햇볕에 말려서 각종 소스와 야채 돼지고기 햄 등과 섞어 먹는 요리다. 면발이 아주 쫄깃하고 맛있었다. 우리나라 쫄면은 입안에서 누가 이기는지 한바탕하는 느낌이라면 카우라우 면은 귀엽게 앙탈 부리는 정도의 쫄깃함이다.
식사 후에 호이안의 구시가지에 야경을 보러 갔다. 호이안은 등불의 도시다. 거리를 온통 채운 등불이 도시를 은은히 밝히고 있어서 무척 로맨틱한 분위기다. 호이안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는데 식민지 시절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건물이나 거리의 분위기가 일본스럽다. 단이 7년 전에 왔을 때는 아직 관광 화가 안되어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리의 등불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토바이가 통제되는 구역이라 사람들 틈에 섞여 이곳저곳 걷다가 숙소로 돌아와 바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