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Bordeaux Day 20
***몬트리올에서 정신없이 살다 다시 돌아왔습니다. :) 아직 100편이 넘는 백팩신혼여행 일기가 있으니..재밌게 읽어주세요 :)***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숙소 체크인 시간은 오후 두 시. 우리가 보르도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반. 파리에서 보르도까지는 8시간이 소요되는데 장시간 소요되는 거 치고는 무척 저렴하고(17£) 편안하게 왔다. 단지 처음 표 확인할 때 여자 운전기사 혼자 탑승객을 체크하고 짐 태그를 나눠주느라 버스 출발 시각이 20분 정도 지연되어 승객들이 불만을 표현한 것, 뒤에 앉은 영국인 여자애들이 조금 말이 많았던 것, 운전기사가 라디오를 틀어서 잠자기 불편했던 것, 만 빼면. 장시간 운전이라 중간쯤에서 운전기사가 바뀌었고 다음 분은 무척 유머러스한 아저씨였다. 예를 들면 뒤에 여자애가 너무 춥다고 에어컨 꺼달라고 불평하자,
"승객 여러분, 뒤에 앉은 사람은 덥고 앞에 앉은 사람은 추우니 뒷좌석 분들은 겉옷을 벗고 앞 좌석 분들은 그걸 입으세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어쨌든 우리는 세계 최고의 와인 생산지 보르도에 왔다.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 6시간을 때워야 한다. 먼저 근처 카페에 들어가 크루아상과 커피, 오렌지주스 세트(4.9€)를 주문했다.(유럽에서 늘 음료를 2개씩 주는 게 신기했다.) 확실히 파리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가격이 훨씬 착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햇볕은 기분 좋게 쨍쨍하다. 이런 날씨에는 사진을 어떻게 찍어도 예쁘게 나온다.
보르도의 첫인상은 무척 수수하다. 파리가 세련된 노 과부 같은 느낌이라면 보르도는 시골 할머니 같은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건물들이 무채색이고 파리보다 덜 화려하지만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단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배낭 가방을 고쳐 매고 걷기 시작했다.
맑은 하늘, 아름다운 건축물.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건축가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보르도의 트램은 무척 특이하다. 그냥 길 한가운데를 지난다. 위험하지 않을까 했는데 속도가 느려서 주의를 조금만 기울이면 괜찮을 것 같기도? 중세 분위기가 나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모던한 트램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매력적이다.
보르도는 작은 도시라 외곽에 위치한 숙소까지 걸어서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물론 우리는 10kg 가 넘는 배낭을 멘 상태라 힘이 들기는 했지만..(카미노 길 걸을 것을 준비하며 5km 이하 거리는 무조건 걷기로 했다.) 번화가를 벗어나고 주거지역을 걷는 중 허기가 져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는데.. 걸어도 걸어도 가게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중심가를 벗어나니 흔한 상점 하나 없이... 정말 작은 도시구나...
다행히 숙소를 지나쳐 조금 더 가니 큰 마트가 있어서 거기서 케밥을 먹고 마트 구경을 했다. 오!! 무척 싸다!! 온갖 종류의 햄과 소시지가 대부분 1, 2€였다. 와인도 보통 3~5€. 보르도 와인 2병, 소시지, 햄, 치즈, 물을 18€ 유로에 사서 2시쯤 에어비앤비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단독주택인 줄 알았던 숙소가 아파트여서 몇 호인지 몰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주인과 연락을 할 때 2시쯤 오면 코드와 키를 준다길래 그렇구나 했는데... 20분 정도 어쩌지 하며 발을 동동 굴리다가 에어비앤비에서(인터넷이 안되지만 저장해둔 페이지가 다행히 켜짐, 여행 시에 구글 드라이브 오프라인 모드 정말 유용합니다.) 집주인의 성을 찾았다. 포스트 박스에 적힌 같은 이름을 확인하고 인터폰을 걸었다. 다행히 맞았다! 집주인의 불충분한 설명에 약간 불만이 생겼는데 내려오신 분은 노부인으로 무척 친절했고 집은 깔끔했다. 더 상세히 묻지 않은 우리의 잘못도 있으니..
보르도에는 호스텔이 없고, 호텔뿐인데 시작하는 가격이 거의 일박에 70€였다. 보르도 시내는 현지인에게도 비싸다 보니 저렴한 숙소는 주변 도시에 있고.. 다행히 우리는 보르도 내에 위치한 숙소를 2박에 7만 원으로! 너무 싸서 집이 좀 안 좋을 줄 알았는데 2명이 쓰기에 충분한 방이었고 주인분이 집을 비운 시간에는 집 전체를 마음 편히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어제 못 잔 잠을 보충하느라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따가운 햇볕에 눈을 떴다. 오후 7시인데도 이렇게 뜨거운 햇볕이라니...
우리는 늘 배가 고프기에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버스를 타고 중심지로 가서 주인 할머니의 조언대로 작은 골목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수많은 레스토랑이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우고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모든 레스토랑이 좋아 보여 고르기가 힘들었는데 프랑스에서 맛없는 요리는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 터라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식전, 메인, 후식 3가지 코스가 14€. 음식은 훌륭하였다! 단이 나를 위해 프와그라를 시켰는데.. 버터와 기름을 마구 섞은 그런 맛이라 별로...
밥을 먹고 강변 쪽으로 찬찬히 걸어 물의 거울, Le miroir d'eau에 도착.
맨눈으로 볼 때는 물에 비치는 성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았으나 사진을 찍으니 너무 아름다웠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성, 노래 등등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이 도시를 로맨틱하게 만들었다.
단이랑 와인을 병나발 불며 기분이 좋아져 스윙 댄스를 췄다. 음악도 없고 동작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곳에서 췄던 것보다 즐거웠다.
단이랑 앞으로 열심히 연습하기로 약속하고 자정쯤 집으로 돌아와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