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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Mar 15. 2023

미국 교육은 나를 슬프게 했다

혹시 Public School이란 곳을 다녀보셨나요?

(미국 일기 #10)


미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즈음. (사실 지금도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2년은 흐른 것 같다.) 중학생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제 엄마를 붙잡고 매일 같이 울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고, 이미 형성된 또래 집단에 끼어들기도 어려웠다. 호기심에 말을 붙이는 미국 친구들도 있었지만 딸아이는 언어 때문에 머뭇거렸다. 인내심이 짧은 중학생 친구들은 어깨를 으쓱하고 떠나갔다.


한국 학교에서는 몇 학년 몇 반이라는 강제적인 집단에 자동으로 묶이게 된다. 학교에 가면 항상 같은 자리에 앉고 주위에 친구들은 일정하다. 친하든 그렇지 않든 매일 보게 된다. 그 공간을 관할하는 담임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학교에서 부모와 같은 존재다. 딸아이는 이런 한국 시스템에서 8년을 보냈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껴왔다.


미국은 그런 게 없었다. 정해진 공간이라는 것이 없다. 수업도 선택이어서 아이들마다 달랐다. 미드에서 봤던 것처럼 수업이 끝나면 계속 이동해야 했다. 전학생이어서 아직 로커도 배당받지 못했다. 무거운 짐을 끌고 다녀야 하는 동양 여자 아이는 학교에서 어디 한 곳 편하게 마음을 붙일 사람과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에, 그리고 대학에 처음 갔을 때 나도 그랬다. 강의실에 가도 과방에 가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수업에 들어가든 말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같이 점심을 먹을 사람도 없었다. 세상 모두가 화창하고 즐거운데 나만 혼자 겉돌고 있다는 느낌은 당혹스러웠다. 나도 나름 인싸였단 말이다. 그때 나는 스무 살이었고 지금 딸아이는 열다섯이다.


건너서 아는 사람의 자녀가 캐나다에 갔다가 적응에 실패하고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땅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아이에게 힘을 주기 위해 꺼낸 말은 뉴저지의 건조한 공기에서 하릴없이 부스러졌다. 학교 선생님과 상담을 해야 했다.


한국처럼 담임 선생님은 없지만 카운슬러 교사가 지정이 돼 있었다. 이름도 어려운 디세바스티앙 선생님과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선생님에게 (나에게는)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파파고가 도와줬다.


“디어 미즈 디세바스티앙. 지난주에 전학을 온 김 아무개의 아빠입니다. 딸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데 언제나 큰 도움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처음이라 그렇겠지만 요즘 아이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학교 생활에 좀처럼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나 뵙고 상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베스트 리가즈. 경래 김.”


카운슬러와 ESL 양쪽에서 득달같이 답장이 왔다.


“중요한 지적을 해 줘서 감사하다. 우리도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부족했던 것 같다. 미팅을 잡겠다. 다른 코어 서브젝트 선생님들까지 다 모으겠다. 다음 주 00일 12시 시간 되시나.”


일이 커졌다. 잠깐 만나서 튜터라도 붙여야 할지 간단하게 상담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미팅 날에는 카운슬러, ESL, 영어, 수학, 사회(Civic), 과학 등을 망라한 교사단(!)이 모였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내 앞에서 이 선생님들은 앞으로 딸아이를 어떻게 신경을 쓸 것인지, 각 과목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한국 학교에서 만약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교사들이 이 정도로 기민한 움직임을 보일까. 놀라운 경험이었고, 약간은 감동적이었다. 그 효과나 결과는 차치하더라도.


동네 고등학교 입학 설명회.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행사부스-합창공연-학교투어-치어리더공연. 가장 인상적인 건 아이들 표정이 꽤나 밝았다는  점이다.

 

동네 학교에서는 학부모나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를 꽤 자주 개최한다. 학생들이 만드는 발표회에 주민들을 초청하는 식이다.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설명회가 열렸다. 딸아이가 여기 편제로 8학년이고, 9월에 하이스쿨에 입학한다. 호기심에 같이 가 봤다. 겨울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다.


학교 정문은 축제라도 열린 것처럼 시끌시끌했다. 고등학교 치어리더팀이 주민들을 환영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작은 부스들에서는 각 과목 선생님들이 질문에 답변을 하고, 학생들은 동아리를 광고했다. 간단하게 먹을 것, 마실 것도 있었고, 학생들이 가이드가 돼서 주민들에게 학교 투어를 시켜주기도 했다.   


우리를 가이드해 준 학생은 주니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얼른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로 따지면 고2에 해당하는 친구였다. 마침 아시안 계통이었다. 체육관과 과학실, 카페 등을 투어 하면서 학생들이 여기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설명했다. 청중을 리드하는 솜씨가 대학생은 돼 보였다.


투어가 끝나고 물어봤다. 얘가 내 딸이다. 이 아이한테 이 고등학교를 진짜 추천하나? 주니어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여기는 퍼블릭이다. 프라이빗 학교 수업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퍼블릭의 장점은 다양성이다. 지역 커뮤니티와도 더 열려 있다. 나는 이 학교가 좋다. 말 그대로 우문현답이었다. 3년 뒤 내 아이가 저렇게 클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가이드를 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 선발된 아이들일 거라고 추측한다.)


투어가 끝나고 공식적인 입학설명회가 강당에서 시작됐다. 합창단과 치어리더가 잠깐이지만 꽤 수준 높은 사전 공연을 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의 인사. 주민들은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흡사 전당대회 분위기였다. 교장 선생님은 이 학교가 아이들을 얼마나 정성껏 지도하는지 정성껏 설명했다.


퍼블릭 스쿨은 주소에 따라서 배정이 된다. 사립학교는 아무래도 학비가 비싸기 때문에 장벽이 있다. 학생들은 그냥 오게 돼 있다. 굳이 이런 행사를 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동네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가 입학 설명회를 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닌가.

 

출근 시간에 운전을 하면 노란색 스쿨버스를 보게 된다. 아주아주 자주자주 마주친다. 도로에서 스쿨버스의 위상은 대단하다. 1차선 도로라서 스쿨버스가 멈추면 뒤차들은 서야 한다. 가다 서다를 수십 번 반복하지만 빵빵거리는 차는 볼 수 없다. 건너편 차선에 차가 없어도 추월하지 않는다. 조용히 기다린다. 이이들이 천천히 탈 수 있도록. 서두르지 않아도 되도록.


등하교 시간에 학교 주변은 전시 작전 체제에 들어간다. 수백 대의 스쿨버스가 각 목적지로 떠나고 모든 교차로에는 경찰이나 공무원이 배치된다. 아이들은 여유 있게 도로를 지나고, 운전자들은 경찰의 지시에 따른다. 무조건 보행자 우선이기 때문에 차를 타고 교차로를 지나는 것이 꽤 힘들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커다란 체육관, 넓은 잔디 운동장, 수영장, 스마트한 강의실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는 학생들을 진지하게 케어하는 선생님들이 보였다. 그리고 퍼블릭 스쿨(공립학교)이 지역에서 진짜 퍼블릭한 기관으로 운영되는 (우리에게는) 진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학교가 '입시 기관'이 아니라 '공공 기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이라도 하고 있을까.


가끔 학교에 갈 일이 있다. 코와 귀와 입에 피어싱을 한 남학생이 걸어간다. 속옷인지 겉옷인지 모를 괴랄한 패션의 여학생이 친구들과 장난을 친다. 말해 주고 싶다. 얘들아. 너희들이 얼마나 복 받은 아이들인지 너희들은 모를 거다.


여기 와서 미국의 광활한 자연을 보면 시기와 질투가 끓어오른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타고난 수저의 성분 같은 거니까. 그런데 교육은 우리가 만들 수 있고, 고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더 슬프다. 우리가 고통스럽게 통과한 학교를 우리 아이들이 여전히, 아직도, 계속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억울하고 화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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