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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Jul 19. 2023

세상에, 이사까지 셀프로 한다고?  

내가 한국에서 참 편하게 살았구나

(미국일기 #27)

6개월 동안 임시 아파트에서 기거하다가 드디어 집 같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비록 월세에 코딱지 만한 집이지만, 마당도 있는 어엿한 ‘하우스’다. 딱 하나 문제는 이사를 어떻게 할 것이냐였다.


한국에서 오는 큰 짐은 이사 갈 집에 바로 도착할 예정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벌써 6개월을 살았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구도 생겼고 잡동사니도 많아졌다. 호기롭게 선언했다. 이 정도는 내가 차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 될 것 같은데.


입주 날짜를 임시 아파트 만료일보다 일주일 정도 당겨서 계약을 했다. 여기서 사용하는 자동차가 크지는 않지만 나름 SUV라서 큰 박스 서너 개는 충분히 들어간다. 두어 달 전부터 아마존에서 배송돼 오는 박스도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 책상은 분해 해서 넣으면 겨우 들어갈 것 같았다. 냉장고 음식은 보냉 박스를 몇 개 사서 최대한 신속하게 옮기기로 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셀프 이사는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나오는 아파트 동선이 너무 길었다. 현관문에서 엘리베이터까지 50미터. 다시 1층 엘리베이터에서 주차장까지 50미터. 불 나면 다 죽겠구나. 아무런 도구 없이 박스를 하나하나 나르다 보니 온몸이 땀에 젖고 숨이 차 올랐다. 그래 이삿짐센터가 돈을 그냥 받는 게 아니구나.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친구가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계속 생각났다. 며칠 동안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새로 입주하는 집은 도로 바로 옆에 있어서 한결 간편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차에서 짐을 꺼내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나와서 말을 걸었다.


이사 축하해. 아이가 몇 살? 우리 딸이랑 같은 나이네. 여기가 학교가 가까워서 너무 좋아.


미국 사람 특유의 스몰하지 않은 스몰토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수다스럽고 친절한 새 이웃은 우리가 이사를 들어오고 며칠 뒤 이사를 나간다고 한다.


그래도 이사 갈 집은 여기서 멀지 않아. 여기는 렌트였는데 집을 새로 샀어.


안물안궁이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축하해 줬다. 그러고 보니 이웃집 앞에 트럭이 주차돼 있고, 누군가 짐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이웃집의 이삿짐을 옮기는 건 일꾼이 아니라 가족들이었다. 아저씨가 중학교 다니는 딸아이와 낑낑거리면서 침대를 트럭으로 옮기고 있었다. 온 가족이 달라붙어 소파를 나르는 모습은 한국에서 흔히 볼 수는 없는 풍경이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셀프 이사다.


이사를 셀프로 하나?

당연하지. 저 트럭만 빌려서 우리가 해.

대단하다. 안 힘드나?

이 주일 정도 걸리지만 할 수 있어.

냉장고 같은 건 어떻게 나르나?

냉장고는 안 가져가.

(아차. 여기는 미국이구나.)

셀프 이사를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


여기 사람들은 한국과 참 다르게 산다. 수도를 고치고, 페인트를 칠하는 정도의 집안일은 웬만하면 셀프로 해결한다. 이사도 집안일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일 거다. 뉴저지의 최저임금은 14달러가 조금 넘는다. 한국으로 치면 만 8천 원 정도다. 물론 기술이 있는 사람의 인건비는 상상 그 이상이다.


새로 이사한 집 싱크대 물이 잘 안 빠져서 집주인한테 얘기했더니 배관공을 한 명 보내줬다. 15분 남짓 잠깐 둘러보고 견적을 냈다. 지하실 파이프를 전제적으로 손봐야 해서 작업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며 다시 날짜를 잡겠다고 말했다. 나가면서 아이패드를 내밀더니 사인을 하라고 했다. 오늘 작업에 대한 비용 확인이었다. 120달러. 세상에. 15분에? 사인을 망설이니까 배관공이 집주인에게 청구하니까 걱정마라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래. 여기 사람들이 집안일을 왜 스스로 해결하는지 알겠다.


물론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다는 점도 큰 이유다.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주말에 집을 손보고 마당을 가꾸면서 시간을 보낸다. 평일에도 4시면 퇴근하는 게 대부분 직장인들이다. 한국처럼 노동시간이 길고, 일 끝나면 술도 한잔 해야 하고, 주말에는 지쳐서 잠을 자야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남을 시켜서 깔끔하게 포장이사를 하는 우리가 여유가 있는 걸까. 아니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붕 수리를 직접하는 여기 사람들이 여유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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