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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Nov 05. 2023

글은 손이 아니라 케이블로 씁니다

미국에 있을 때도 그게 문제였다. 


“어디서 쓸 것인가.”


집에 있으면 자꾸 소파에 눕게 된다. 침대도 있다. 자고 일어나면 배가 고프다. 점심을 먹어야 한다. 곧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저녁을 해야지. 드라마를 하나 볼까. 벌써 밤이네. 이제 자야겠다. 


그래서 동네 카페에도 가본다. 주인 눈치가 보인다. 결국은 스타벅스. 하지만 밥을 먹으러 다녀올 수도 없다. 도서관에 가본다. 좋은 자리는 이미 점령이 돼 있다. 옆자리 아저씨가 자꾸 전화를 한다. 집중이 어렵다. 


중고등학교 때도 비슷했다. 시험 기간이 되면 어디서 공부를 할까 고민했다. 집에서 하면 TV라는 적이 있다. 독서실을 가면 친구라는 적이 있다. 진퇴양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백만 가지다. 애초에 시험공부를 하기 싫었던 게 아닐까.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후배 집에 머물렀다. 지내기는 편한데 집에서 글을 쓰기는 어렵다. 역시 밖으로 돌아야 했다. 여기서도 스타벅스. 스타벅스가 가장 눈치가 안 보인다. 스타벅스가 없으면 어쩔 뻔했나. 


문제는 10시에 문을 닫는다는 점이다. 찾아보니 롯데리아가 새벽 4시까지 문을 여는 곳이 있다. 시끄럽다. 온갖 취객들의 집합소다. 문 앞에서는 왜 그렇게 담배를 피워댈까. 배도 안 고픈데 햄버거를 시켜 먹게 된다. 


한국에서 들어와서는 지낼 곳이 마땅찮았다. 어머니 집은 책상도 없다. 와이파이도 없다. 인터넷을 깔자고 했더니 필요 없다고 하신다. 여기서도 스타벅스로 간다.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마음 내키는 곳으로 간다. 이 떠돌이 글쓰기도 10시까지만 가능하다. 


밤에도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진도를 빨리 나가고 미국에 돌아가야 한다. 나이 50에 언제까지 집도 절도 없이 돌아다녀야겠나. 


용인에 사는 어머니 집 옆 스타벅스에서 앉아 있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작업을 하는 PD가 사용하는 사무실이 상암동에 있다. 거기로 가야겠다. 거기는 밤을 새도 상관없다. 좀 추우려나. 난방기가 있었던 것 같다. 


짐을 챙겨서 광역버스를 타고 강남에 내린다. 9호선을 타고 여의도를 가서 오랜만에 보는 후배와 점심을 먹는다. 다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상암에 왔다. 사무실이 아늑하다. 깨끗하다. 차를 마실 수 있는 포트도 있다. 결정적으로 아무도 없다.


오후 4시다. 10시에 끝내지 않아도 되니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진다. 기지개를 켜고 노트북을 꺼냈다. 오늘부터 진도를 쭉 빼는 거다. 


잠깐. 이게 어디에 갔지? 노트북 케이블이 없다. 가방을 뒤집어서 탈탈 털어본다. 핸드폰 케이블, 스마트와치 케이블, 외장 배터리 케이블, 이어폰 케이블. 온갖 전선들이 나오지만 끝에 무거운 게 달려 있는 노트북 케이블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서 빠졌지? 스타벅스에서 안 챙겼나? 그럴 리가. 아까 더워서 지하철에서 옷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그때 흘렀나? 아니겠지. 식당에서 다시 옷을 꺼냈다. 그럴 가능성은 없다. 도대체 어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깨달았다. 케이블이 없으면 노트북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노트북이 없으면 글은 쓸 수가 없다는 걸. 


노트북은 레노버. 싸구려다. 레노버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신도림이다. 


“거기 노트북 전선도 판매를 하나요?”

“네. 그런데 저희 매장에서 사면 5만 원입니다.”


이런 도둑놈들. 인터넷 검색을 해 봤다. 19,800원. 지금 주문하면 내일 도착한다고 한다. 일단 주문했다. 그럼 내일까지는 어떻게 하지? 내일 오후에 오면 그때까지 놀아야 하나. 그러다 내일 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모레 오면 그때까지 놀아야 하나. 


근처 피시방을 검색해 봤다. 리뷰가 엉망이다. 담배 냄새가 난다. 청소를 안 한다. 컴퓨터 사양이 낮다. 말들이 많다. 피시방은 게임을 하는 곳이지 글을 쓰는 곳은 아닌 것 같다. 


혹시나 싶어 스타벅스에 전화를 했다. 개별 매장에는 전화를 걸 수 없고 본사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그쪽에서 확인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제가 노트북 전선을 매장에 두고 온 것 같아요. 확인이 가능할까요?”

“어느 매장이시죠?”

“용인 기흥역 쪽이에요.”

“그쪽에서 분실물 신고 된 건 없어요. 신고 들어오면 고객님에게 문자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문자가 오지 않는다. 스팸함도 열어본다. 역시 스타벅스는 아닌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스타벅스가 유력하다. 약속 시간 때문에 일어날 때 약간 마음이 바빴다. 평소 정신머리라면 놓고 왔을 가능성이 크다. 


용인 기흥까지 가려면 상암에서 2시간이 걸린다. 왕복 4시간. 갔다 오면 9시가 넘는다. 케이블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 피시방에 갈까. 속는 셈 치고 용인에 갈까. 


버스를 탔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서 차가 밀린다. 괜한 짓인가. 이 와중에도 잠이 온다. 스타벅스는 저녁 시간이면 한산해진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는 어린 커플이 앉아서 꽁냥꽁냥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있다. 케이블이 꽂혀 있던 자리에는 꽁냥꽁냥들의 핸드폰 충전기가 꽂혀 있다. 


눈치를 보면서 커플들을 주위를 살폈다. 저거? 1미터쯤 떨어진 의자 위에 고양이가 가지고 놀던 실뭉치 같이 생긴 게 놓여 있다. 케이블이다. 내 거다. 


“저… 혹시 이 케이블 선생님들 건가요?”


선생님이라니. 20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꽁냥꽁냥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두 명이 동시에 되물었다.


“네?”

“아. 저 케이블이 제가 놓고 간 것 같아서요.”


꽁냥꽁냥들은 그제야 안심하는 얼굴이 됐다. 


“저거 여기 원래 있었어요. 저희들 거 아니에요.”


이렇게 케이블을 되찾고 2시간을 버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사무실로 왔다. 10시다. 지친다. 기운이 없다. 내일부터 할까. 


아. 주문한 케이블 취소해야 하는데. 확인해 보니 이미 배송이 시작됐다. 부지런한 한국 사람들. 반품 단추를 누르니 5천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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