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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n 30. 2016

나도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독후감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었던 그 이름. 

마광수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이하 나야좋)>. 

드디어 그 책을 읽고,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는 기쁨으로 이 독후감을 쓴다.


제목이 그러니 당연히 야한 여자가 좋다는 내용이야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오직 야한 여자가 좋다는 이야기만을 하려고 나온 시시한 책은 아니다. 물론 그 당시(1989년)에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문구 자체가, 그리고 대학 교수가 그런 글을 사회에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요 파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책의 주제가 꼭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야좋>의 주제는 무엇인가?

<나야좋>의 주요 주제는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보다 개방성을 띄어야 하며, 그것을 통해 진정한 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개방성. 센세이셔널리즘(요즘 세태에서는 '막장 드라마'로 표상되는 천층의 자극적 문화주의)을 넘어선 진정한 에로티시즘의 인정. 사디즘과 마조히즘조차도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음을 당연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회. 마광수 교수는 지금 얘기해도 놀랍다 소리 들을 이야기를 내가 태어나던 1989년에 한 것이다(심지어 책은 1989년에 출간되었으나 그 안에 담긴 놀랄 내용의 에세이들은 70년대에 작성된 것도 있다).


나는 <나야좋>이 출간된 1989년에 태어났고, 지금 28살의 청년으로서 2016년을 살고 있다. 마광수 교수가 당시에 예측하기로는 '지금 태어난 아이들은 미래에 좀 더 열린 생각을 갖게 되겠지. 우리 사회도 보다 문화적 민주화가 이루어졌겠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연극과 영화를 핍박하고,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일종의 '변태 성욕'으로 취급하며, 시나리오의 막장성과 여자 아이돌의 노출로 대변되는 센세이셔널리즘은 극에 달했다.


만약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문화부 장관을 마광수 교수로 임명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문화적 민주화'에 가장 앞섰고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며, (인터넷으로 알 수 있는) 그가 살아온 길 역시 그 스스로 주창한 바에 크게 어긋남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미 오래전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을 잘 사는 방법으로 주장한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야좋>에 실린 모든 글들이 전적으로 옳고 또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특히 시에 관한 해석을 실은 <제3장 시와 성>이 그러한데, 그중에서도 윤동주의 <자화상>에 대한 해설은 기가 막힐 정도로 독특하다.

우물은 자궁이나 성기의 상징으로 해석되곤 하는데, 우물이 갖는 신비로우면서도 무시무시한 분위기, 그리고 '물'이 주는 생식적인 느낌 등이 혼합되어 우리의 자궁 회귀본능이나 성욕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한 번도 우물을 자궁이나 성기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더군다나 윤동주의 시 속에 있는 우물이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이 해석을 보고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임은 분명하다. 비록 오래된 책이고 당시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비판한 점이 근 3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유효한 점이 많이 남아 있다. 현대인의 병은 대체로 정신적인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본 것, 시를 두고 꼭 민족주의와 리얼리즘이 있는 것만을 좋은 작품으로 취급하는 건 잘못되었다고 본 것, 비평가들이 제대로 된 비평도 아닌 해설을 써주고 작가들 곁에 기생하는 것 등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아주 적합한 비판이다.


요약하자면 주요한 내용은 '나는 야한 여자가 좋고' '여자가 야해도 되고 그런 야함을 좋아해도 되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을 가진 동물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는 것인데, 이런 마광수 교수의 생각에 동감하는 이라면, 혹은 호기심이라도 가는 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내용이 결코 어렵지 않고,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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