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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ug 26. 2016

질풍노도와 같은 베르테르의 사랑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독후감

천사…! 흥! 누구나 자신의 여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한다네. (…). 하지만 그녀가 얼마나 완벽하고 또 어째서 완벽한지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네.


천사라는 말조차 완벽한 그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 미사여구는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난 후 사랑에 빠져 남긴 말이다. 조금은 유치한가? 아니면 낯간지럽지만 로테가 부러운가? 베르테르의 사랑에 대해 알기 위해 조금 더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내 영혼은 그 생동하는 입술과 생기 넘치는 풋풋한 뺨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으며, 그녀가 하는 말의 장엄한 의미에 완전히 심취해서…
밤늦은 시각에 당신 곁을 떠나서 당신 집 문을 나설 때면, 언제나 북두칠성이 나를 마주 보았다오. 내가 얼마나 황홀한 마음으로 자주 그 별자리를 바라보았으며, 또한 자주 두 손을 올리고서 나를 휘감은 환희의 징표로, 성스러운 표지로 삼았는지 모른다오.

베르테르는 언제나 로테를 사랑하고, 그 사랑은 식지 않으며, 그 사랑의 표현 또한 언제나 한낮의 태양처럼 뜨겁고 강렬하다. 그러나 <베르테르>를 읽은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니, 읽지 않은 사람도 알 것이다. 결국 베르테르는 그 사랑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고 스스로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을…….


놀랍게도 이 위대한 사랑의 송가는 작가 괴테의 경험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괴테는 1772년 베츨라르에서 열린 어느 무도회에서 샤를로테 부프라는 여자를 만나서 반하게 되는데, 이 여자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막을 수 없는 것이어서 괴테는 로테를 사랑했고, 그러다 로테가 약혼자인 케스트너에게 괴테의 이러한 마음을 털어놓자 이런 쪽지를 남기고 베츨라르를 떠나 버린다.

만약 그대들 곁에 더 머무른다면, 나로서는 더 견디지 못할 것이오. 이제 나는 혼자요. 내일 이곳을 떠나겠소. 오, 머리가 터질 것 같구려

더 놀라운 것은 베르테르의 자살마저 괴테의 실제 경험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베츨라르의 공사관 서기관인 예루잘렘에게서 비롯했다. 예루잘렘은 당시 직장 동료의 부인을 사랑했으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해 권총으로 자살했고, 학창 시절부터 예루잘렘을 알고 지내던 괴테는 이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비극적 실화의 주인공은 예루잘렘뿐만 아니라 괴테까지 될 수도 있었다. 예루잘렘과 괴테 모두 이미 결혼이나 약혼을 한 여자를 사랑했고 강렬한 사랑 때문에 한 명은 자살하고 한 명은 도망쳤으니 말이다. 그래서 괴테 역시 "나 스스로 예루잘렘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실을 깨닫고 무척 흥분하였다."라고 했다.


<베르테르>의 문체는 전반적으로 폭풍처럼 몰아친다. 특히 전반부에 나오는 베르테르의 편지는 로테에 대한 광적 사랑으로 물들어 있으며 그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탓에 읽기가 거북할 정도다. 나는 대문호 괴테가 소설을 왜 이런 식으로 읽기 힘들게 썼을까 했는데, 베르테르의 실제 감정 정도를 고려하면 정말 이런 반미치광이 같은 편지가 나오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괴테 자신이 그런 사랑을 해 보았기 때문에 더욱 현실감 있게 쓸 수 있었던 것일 테고 말이다.


일설에는 <베르테르>를 읽고 나서 자살을 택한 유럽의 연인들이 꽤나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고, 그 사람들이 소설 속 베르테르에게 자신을 일치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혹여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베르테르처럼 자살하는 것만은 말리고 싶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삶 속에 또 어떠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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