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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02. 2016

잃어버린 유토피아의 추억, 히피와 우드스탁

크리스티안 생 장 폴랭, <히피와 반문화> 독후감

인간은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것을 동경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가 살기 이전의 시대를 ‘황금시대’라 칭하며 동경하지만, 막상 그 시대의 사람들은 또 그 이전의 시대를 동경하고 있는 것처럼.

음악인들에게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던 히피즘의 시대야말로 황금시대로 여겨지는 때이다. 자유로운 마약의 사용과 쉴 새 없이 퍼져 나가는 악기 소리, 그리고 질펀한 섹스까지. 지상에서 이보다 더한 축제가 다시 벌어질 수 있을까 싶은 향연의 극치다.

그리고 그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배경에는 당연히 어떠한 중심 사상이 있었다. 그것은 쉽게 말해 무한한 자유에의 추구이며 다른 말로 ‘히피즘’이었다.     


히피즘은 60년대 미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사상으로 기존 질서에의 순응을 거부하고 인간의 완전한 자유를 추구한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자유분방하고 낯선 히피족의 옷차림으로 기억하는 이 사상은, 이상적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결국 실패한 사상이다. 정확히 말하면 사상의 실패란 있을 수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실패는 전체 인구 상에서 히피즘을 지지하고 추종하는 세력의 수를 많이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얼마나 많은 국가를 전파시켰느냐 하는 면을 생각해 보면 히피즘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또 그것이 후세대들에게 여전히 전해지고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하는 면을 생각해 보아도 히피즘은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히피즘은 그 전성기에 미국에서 누리던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확실히 지금은 소멸한 것에 가깝다. 요즘 누가 히피족의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가? 

<히피와 반문화>에 따르면 히피즘의 소멸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히피즘은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하는데,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로 사회를 이루고 사는 동물이 아무런 질서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고로 무한한 자유의 추구는 개체로서의 소멸 혹은 고립에 이르는 길이며 A라는 기존 질서를 벗어난다 해도 필연적으로 B라는 새로운 질서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질서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서로 편입해야 하는 역설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히피즘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질서에서의 탈피를 위한 다양한 노력(성소수자, 여성 등의 인권 문제나 약물 사용 문제, 결혼과 피임의 문제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일어났다)이 있었고 그로 인해 주류로 인정받지 못해 생기던 많은 문제에서 해결책을 찾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모두가 이성애자임을 주장하고(혹은 위장하고), 약물 사용을 금지하는 청교도적 정신만을 숭상하고, 입 다물고 기존 질서를 따르기만 허용했다면 지금의 미국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며 인류 또한 멸종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다양성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모든 분야에서 기존 질서를 배격하는 새로운 흐름의 탄생을 사랑한다. 그것은 인류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기존 질서와 새로운 질서 사이에 세력 조정이 일어나면서 인류 사회 전체는 보다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는 히피즘을 사랑한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가, 인류가 히피즘을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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