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Jan 19. 2017

인간이 글과 문학을 얻으면서 잃어버린 것

조르조 아감벤, <불과 글> 독후감

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 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과 글>의 표지에서 조르조 아감벤은 '우리의 글쓰기가 가야 할 길'이라는 부제를 제시했다. 글쓰기와 불과 글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1장 요약문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글이 있는 곳에 불은 꺼져 있고 신비가 있는 곳에 서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곧 불과 글은 비슷한 관계가 아니라 하나가 있으면 하나가 없는 반대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과 글이 어떻게 반대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우선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는 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불은 일종의 영감, 원천, 인류의 기원, 신화, 신성 등이다. 그리고 글은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문명, 이성, 과학, 합리 등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이렇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동굴 속에서 불을 피워 살았는데 그 거대한 불을 마주 하고 생활을 이어 나갔으나 글을 읽기는커녕 서로 대화할 언어조차 부재한 상태였고, 현대 사람들은 자기만의 언어와 세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 그리고 시와 소설까지 획득했지만 동굴 속에서 다 함께 바라보던, 그야말로 유일한 열의 원천이던 불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조르조 아감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넓게 말해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 불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 혹은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불을 되찾지 않고서는 그것은 죽은 시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표현.


우리가 시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글로 쓰인 언어를 그것의 기원이 되며 동시에 여정의 목표가 되는 ‘읽기가 불가능한 지점’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그 언어 속에 거주하면서 그 언어를 끊임없이 다루고 다스리는 무언가와 같지 않은가?

우리는 시를 쓸 때 글을 쓴다. 언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이용해 불을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 해야 불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떠한 불분명한 지점에서 시작되어 역시나 불분명한 다른 지점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노랗고 빨간빛의 모호한 형태. 이렇게 표현하면 불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 될까? 모두의 머릿속에 각자 가진 불을 상상할 수는 있되,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래서 불을 표현한다는 것은 '읽기가 불가능한 지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며, 애초에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려한다는 자체가 대단히 요원하고 모순적인 일임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상황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든지 간에, 우리는 오늘날 신의 이름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역자는 후기에서 이 책을 읽고 느끼는 바는 모두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책이나 그렇겠지만, 이 책은 조르조 아감벤이 '글'보다 '불'을 전달하려고 쓴 문장의 모음이다 보니 더욱더 난해하고 주관적인 해석의 여지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읽기가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개인의 소고이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사해 보려면 이 책은 꼭 봐야겠는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