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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n 12. 2018

반복되는 외모평가에 지친 여성들을 위한 책

러네이 엥겔른,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독후감

요즘 한국에서 페미니즘과 더불어 탈코르셋에 대한 여자들의 열망이 대단히 높다. 유튜브에도 탈코르셋에 관한 영상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고, 여자회원이 많은 카페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냐 아니냐 무엇이 탈코르셋이냐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들에 따르면 탈코르셋이란 남자에 의해 강요 받아온 것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행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긴 생머리'나 '미니 스커트' 같은 것들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하려는 남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쁜 여자의 이미지이므로 이런 것들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탈코르셋의 가장 대표적인 행위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삭발'이다.

그러나 삭발을 하고 치마를 가위로 찢고 화장을 포기하는 행위를 보며,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이러한 생각을 떠올렸다.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는 게 전적으로 자기 취향인 여자도 있는 것 아닌가?

모든 여자가 성적 대상화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자르고 옷을 찢는 '동일한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무척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성적 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적으로는 선택의 권한을 좁히는 퇴행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렇게라도 해야만 할 절박한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이하 '거울시간')>에서 말하듯 여자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모평가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거울시간>의 저자는 여자이며, 여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래서 때로는 너무 편파적이다 싶은 주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70% 이상의 여자가 자신의 외모가 나아진다면 삶도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라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데, 저자는 70%가 굉장히 높은 수치고 그래서 여자들이 핍박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나는 이 설문을 남자에게 실시한다면 역시 70% 혹은 그 이상의 수치가 나올 것이라 믿는다.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안타깝게도 그 본능에 따라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반응도 결정되기 때문에 못생긴 남자가 잘생긴 남자에 비해 이익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외모 평가에 관한 한 남자와 여자의 삶은 분명히 다르다. 남자들은 모였을 때 서로의 외모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 연예인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들은 분명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머리를 어디서 했는지, 화장품은 어디 껄 쓰는지, 옷은 어디서 사는지, 살은 어떻게 빼는지가 주요한 주제가 된다. 또 남자들은 종종 학교나 회사에 안 씻고 가기도 한다. "머리는 어제 감았으면 됐지!" 하고 당당하게 간다. 혹은 "안 씻고 이 정도면 미남이지."라고 하거나. 여자들은 전쟁 같은 출근길 속에서도 앞머리에는 컬을 붙이고 쉴 새 없이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두드려 댄다. 여자의 외모가 어제와 다를 경우(특히 못할 경우), 학교나 회사에서 농담이든 진담이든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쉴 새 없는 평가에 직면하는 인간은 성장할 수 없다. 인터넷과 TV에서도 흔히 "남자들은 자기가 잘 생긴 줄 알고, 여자들은 자기가 뚱뚱한 줄 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남자들은 외모 평가를 덜 받고, 여자들은 항상 외모 평가를 받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자기가 못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자는 자기 외모에 더욱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고, 아침마다 화장을 하고, 저녁에는 운동을 하며, 하루종일 다이어트를 하고, 주말에는 쇼핑을 한다. 그렇게 사용하는 비용과 시간을 남자가 다른 데 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 있고 알차게 활용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말이다.

문제가 이 정도로 그친다면 좋겠지만 사실 외모 평가에 대한 문제는 때로 생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극도로 말라야 하는 여자 모델들은 때로 거식증에 걸려 숨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모델도 아닌 일반 여자들이 탄수화물과 칼로리에 대한 공포가 생겨 먹은 것을 게워내고 폭식을 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렇게 모든 여자가 뚱뚱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든데는 여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주류사회의 분위기가 일조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평가받는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몸의 외양이 아니라 기능에 집중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과체중이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내 다리는 10km를 달릴 수 있다. 내 오른팔은 테니스를 할 때 멋진 스매시를 날릴 수 있다.'와 같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외양에 관한 한 자신의 모습에 100% 만족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며, 그것이 연예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불행해지는 모든 인간의 전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인 강화를 위해서는 아예 기준을 바꾸어 외양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왜 윤기있는 머리카락, 하얀 피부, 날씬한 허리에는 신경쓰면서 팔굽혀펴기 20개를 할 수 있는 가슴과 팔, 런지 100개를 할 수 있는 허벅지에는 신경쓰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외모 평가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 여자들에게 하나의 구원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이 책이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거울시간>이 외모 자존감이 낮아 먹은 것을 게워내는 여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별개로, 나는 탈코르셋 운동은 실패할 거라고 예측한다. 

첫째, 페미니즘 운동이 이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탈코르셋 운동을 명확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둘째, 그건 다른 나라 페미니스트들이 멍청하고 못나서가 아니라 현재 미의 기준이 이상하다고 해서 '삭발'을 비롯한 다른 획일적 기준으로 몰아가는 것이 절대 새로운 미의 기준을 탄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인간은 원래 아름다운 것을 추구한다. 아기들도 예쁜 것, 못난 것을 구분할 줄 안다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본능적인 추구를 막을 수는 없다.

넷째, 보는 것만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구도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는 어떤 여자에게서는 단발로 어떤 여자에게서는 장발로 어떤 여자에게서는 청바지와 담배로 표출된다. 

그러므로 "아름다워지지 말자!"를 주장하는 운동은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거울시간>의 메시지도 외모에 대한 모든 것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찾자!

이것이 저자가 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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