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남들처럼 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시험을 치는 족족 전교 1등이었고 고등학교 안의 질서는 성적순이었기에 누구도 나를 방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학교에 가면 원래 슈퍼맨 같은 나 자신에다가 공부라는 족쇄까지 사라지니 더더욱 행복한 생활이 펼쳐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대학교 입학 때부터 CC 1호로 이름을 날렸고 그동안 철두철미했던 자기관리는 사람들과 어울려 밤새도록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흔적도 없이 잃어버렸다. 1학기가 끝나고 받아본 성적표는 참담했고, 고작 몇 달 사이에 나는 자기 절제를 잃고 공허한 눈빛을 띠게 된 흔한 대학 신입생이 되어 있었다.
흥청망청 노는 생활이 분명 문제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뭐가 잘못 됐는지를 모르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거였다. 지독한 숙취로 방바닥을 기어 다닐 때면 이제부턴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수업이 끝나고 해가 지면 마음이 헛헛해 다시금 술과 술친구를 찾았다. 밤이면 밤마다 하이에나처럼 대학로를 어슬렁거리며 선배와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떻게든 한 잔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것처럼.
웹툰작가이자 TV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출연자인 기안84는 네이버에서 <복학왕>이라는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본래 주제는 조금 다르지만 사람들은 기안84의 작품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고들 한다. 그건 바로 ‘지방대생들의 지질한 일상’이다. 변변치 않은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더라도 대학교 입학 정원이 훨씬 많은데다가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대한민국이라 대부분 대학교 입학은 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는 집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고 하루 종일 학교에 있기 때문에 많은 규제가 있고 관리가 되지만 대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집을 벗어나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자취를 시작한 20세 신입생들은 그야말로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게 되는데 이 무한의 자유는 어떤 이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되는가 하면 다른 이에게는 무한한 낭비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자유가 주어지면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낭비하게 되는데 그 전형이 바로 <복학왕>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이다. 밤이면 밤마다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겨 길거리에서 잠 들거나 아무 곳에다 토를 하고, 아침이면 숙취 때문에 대리출석을 해 놓고 늘어지게 잔다. 시험기간이 되면 벼락치기로 부랴부랴 며칠 공부를 해 보지만 공부가 될 리 없고, 대부분의 시간을 연애와 친목활동으로 보낸다. 그렇게 사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낄 때도 많지만 열심히 한다고 졸업 후에 취직이 보장된 것도 아닌 것 같고, 일단 즐기고 보자는 YOLO가 너무나 강하게 유혹한다. 이런 요즘 대학생들을 두고 ‘놀 줄만 안다’거나 ‘공부도 안하는 녀석들에게 大學이란 글자는 사치다’라는 등의 기성세대의 반응이 많지만 거기에 딱히 반박하기도 마땅치 않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노는 학생들만의 잘못일까? 대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은 이제 갓 12년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갓 사회에 나온 병아리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 잘하는 사람이 최고다, 공부를 잘해야 인생에서 성공한다, 놀아도 대학 간 다음에 놀라고 공부만 알도록 이끌어 온 주체가 바로 청춘을 비판하는 기성세대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무엇을 해야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쳐 준 적 없으면서 어떻게 이끄는 대로 따라온 병아리를 비난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기성세대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던 80-90년대와는 취업 현장이나 사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적절히 이끌어 주기도 어렵다.
이들에게는 조언을 해 줄 사람과 나은 현실이 필요하다. 자신의 롤모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어릴 때 부모님이 롤모델이어서 그들의 모습을 닮고 자라는 사람이 많듯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도 보고 따라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렇게 팍팍한 현실 속에서 누가 현실적으로 그들의 모델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인가. 랩과 힙합으로 돈방석 위에 앉은 새파랗게 젊은 가수들을 제외하곤 마땅한 롤모델조차 찾기 힘든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