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이 되었다면 전진할 때

by 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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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눈에 띄는 제목들이 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이다. 너무 열심히 살다가 지치는 것을 경계하고, 서두름을 경계하고, 남의 말로 인해 자신을 잃게 됨을 경계하고 있다. 글을 쓰고 읽는 사람들이 모이는 웹사이트 <브런치>에서는 용기 있는 퇴사와 퇴사 이후의 소소한 행복 찾기를 이야기하는 글이 가장 인기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힐링의 여파이고 YOLO의 모습이기도 하다.

처음 힐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때 그 온기에 휩싸여 나도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매일 겨울바람을 맞는 것 같은 내 삶에 작지만 소중한 온기를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그 아늑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힐링 서적을 읽으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어둠을 들어내어 빛을 비춰주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렇게 힐링의 바람 속에서 나는 YOLO를 외치는 수많은 또래 청년들을 만나고 친구로 사귀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인생 지르고 보는 거지!”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고, 취미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는다.


힐링의 온풍은 개개인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는지 몰라도 가혹한 현실을 바꾸어 주지 않았다. 말하자면 우리들, 청년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삭풍 속에 서 있다.

그런데 몇 년을 그렇게 힐링의 온풍 속에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현실을 깨달았다. 힐링의 온풍은 개개인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었는지 몰라도 가혹한 현실을 바꾸어 주지 않았다. 말하자면 여전히 우리들,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삭풍 속에 서 있다. 그 삭풍을 맞으며 기나긴 길을 걸어야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양지에 도달할 수 있는데, 잠시 주어진 오리털 점퍼의 안락함에 마음을 빼앗겨 그동안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회사를 그만두고, 내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안겨주는 여행을 가거나 물건을 사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뒤는? 우리는 그 뒤의 삶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일까?

한때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사회적으로 숱하게 뭇매를 맞았다. 대다수 청년들이 대학도 못 나온 채 중소기업에서 뼈 빠지게 일해 돈을 모으고 있을 때 서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갔다 왔으며 군 복무마저 6개월 특례로 마친 속칭 ‘금수저’가 이 사회가 너무 각박하고 힘들다는 청년들에게 “청춘은 원래 아픈 것이다.”라고 했으니 욕을 먹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사실 메시지 자체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속담에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했고 니체는 초인 사상을 통해 ‘초월’ 그러니까 자신을 넘어서는 그 무엇(something beyond oneself)에서 ‘넘어선다는 것(beyond)’를 강조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고, 노력을 하는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도 당연하므로, 무언가를 얻으려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메시지 자체는 시대와 방식을 막론하고 전해져 왔던 것이다.

내가 힐링과 YOLO의 열풍을 보며 걱정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삭풍 속에 맨몸으로 서 있는 게 힘들어 두툼한 방한화와 방한 재킷을 찾는 것은 좋다. 그러나 잠시 눈을 붙였다 잠에서 깨어나 보면 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중해의 어느 바닷가에 누워 있을 거라는 상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금수저가 물려받는 재산밖에 없고, 그건 애초에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더군다나 돈이 사람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 양지를 스스로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청년에게 가혹한 것은 누가 봐도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고, 대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가혹한 근무환경에 시달리다가 이른 정년을 맞게 된다. 그다음이 없다. 이러니 미래가 보이지 않아 결혼·연애·집 장만·취직·출산 등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지금 네 모습 그대로 충분해.’라는 메시지에 집중하게 된다. 사회를 혼자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사고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친 사회 속에서 작은 개인에 불과한 우리에게 힐링은 반드시 필요한 메시지였다. 그게 없었다면 작은 설치류 동물 레밍처럼 청년들이 모조리 뛰어내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현실이 힘들다고 해서 청년들이 삶 자체를 포기해 버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누구 못지않게 잘 살기를 열망하고 있다. 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그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어 보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맨주먹뿐이니 움직이기를 두려워하는 것이지 지금 바로 죽어버리고 싶은 것은 아니다.

<미움받을 용기>, <자존감 수업> 등 애초 힐링 열풍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사람들이 읽고 보배로 간직할 만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다. 나 역시 <자존감 수업>을 읽고서 과거에서 원인을 찾아 따지려 하기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인지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바꿀 수 없는 과거(환경)에 집착하기보다 바꿀 수 있는 미래(자신)를 대비하는 것. 이보다 더욱 극적이고 생산적인 사고의 전환이 있을 수 있을까?

이런 보배 같은 책들을 읽고서 힘을 얻었다면 품 안에 그 책을 넣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자. 그리고 이 삭풍 부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걸어 나가자. 그렇게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허무주의에 빠져 삶을 버리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당신이 일주일 뒤에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게 될지 혹은 지금 고통받는 환경에서 벗어나게 될지.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좌절해서 무릎을 꿇기보다 어금니 악물고 허벅지에 힘주어 한 발 디디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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