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엠마> 독후감
사람들은 누구나 다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외향적이다, 내향적이다 분간하기가 쉽지 않고 이성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더없이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은 흥미로운 동물이며, 우리는 누구에게서나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엠마는 자기 편지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하다고 느꼈지만 말다툼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엠마>는 19세기 초, 영국의 한 마을, 그것도 한 가족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엠마는 부잣집 아가씨로 예쁘고 똑똑하고 예의발라,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어디 하나 흠 잡을 데 없는 것 같으면서도 이 아가씨에겐 결점이 있다. 바로 자신이 어느 하나 부족한 데 없다고 생각하는 철없는 아가씨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고 타고난 재능이 있지만 그러지 못한 이들에 대해 무지하며, 자신이 무척 똑똑하다는 생각이 시야를 좁힌다. <엠마>는 이 아가씨의 완벽하지 못한 부분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도 절대 이 아가씨가 비난 받지 않도록, 세밀하게 심리 변화과정을 그려낸다.
매우 너그럽게도 당신은 그 얘기를 빼놓는군요. 하지만 당신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았어요.
큰 사건이 일어나 그것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이 소설이 당시 영국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주의 소설’로서 분류될 수 있으며, 그러한 견지에서는 매우 훌륭한 소설이라고 본다. 이를테면 <고리오 영감>처럼 그 시대에 살았던 한 평범한 인물을 중심으로 시대 자체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독특한 성격과 행동은 읽는 재미를 더하는데, 그 중 ‘베이츠 양’을 빼 놓을 수 없겠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다 뱉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성격을 가진 이 수다쟁이 아줌마는 너무나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책을 읽다가도 베이츠 양이 등장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빨리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책을 읽는 사람도 이러할 진대 실제로 베이츠 양과 마주하고 수다를 떨어야 했던 우리의 고상한 엠마 아가씨는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래서 결국은 아랫사람에게 늘 관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엠마 아가씨마저 한 번 핀잔을 주게 되지만 또 우리의 영원한 기사 나이틀리 씨의 따끔한 지적을 듣고 곧바로 깊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한 번 엠마 아가씨의 사랑스러움에 빠져들게 된다.
역자 후기에 언급한 ‘제이나이트’의 후기도 무척 재미있다. 병원에 실려간 한 병사가 수다쟁이 간호사를 보고 “저기 베이츠 양 보고 입 좀 다물라고 해 주세요.”라고 했는데 그 병사가 제인 오스틴의 광팬임을 알게 된 다른 간호사가 더욱 잘 돌봐주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베이츠 양이 못 말리는 수다쟁이라는 것은 <엠마>를 한 번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수다쟁이 베이츠 양, 현명하고 차분한 웨스턴 부인, 늘 건강을 염려하는 우드하우스 씨, 경박하고 짜증나는 엘튼 부인 등 하나의 소설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많은 인물이 기억난다는 것이 바로 <엠마>가 재밌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