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Apr 09. 2019

두 달 동안 독서를 끊어보았다

독서의 자발성 알아보기

 나는 주변에서 알아주는 애서가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해 성인의 평균 독서량이 8.3권인 나라에서 나는 매년 최소 40권의 책을 읽어왔다. 될 수 있으면 한 주에 한 권씩 읽으며, 그 중 절반 이상의 책을 가지고 독후감을 쓴다. 물론 책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선 나만큼 읽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내가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할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그런 내가 두 달이나 독서를 중단했던 것은 그 오랜 시간의 다독과 열독 끝에 가슴 한구석에서 미심쩍은 생각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많은 책을 읽음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건 내가 정말로 좋아서 하는 일일까?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 때문에 내겐 이상한 습관이 생기기도 했다. 바로 부모님이 귀가하실 시간이 되면 하던 컴퓨터 게임이나 모든 것을 중단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보는 척 하는 것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진중하게 책 읽기에 몰입한 나의 연기를 좋아하셨고, 우리는 그렇게 화목하게 지내왔다. 적어도 책 읽기는 내게 가정의 평안을 유지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편이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앞서 말했듯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 브런치에 작성한 독후감만 100편이 넘고, 그 전부터 독후감은 계속 썼으니 어림잡아 1,000권 이상의 책을 읽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모든 책이 내 머리에 남아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분명히 제목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내용도 어디선가 읽어본 것 같은데, 전에 읽었는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책들이 무척 많다. 이쯤 되자 나는 스스로의 독서에 대해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대체 책을 왜 읽은 거지? 읽고 생각하고 썼던 그 숱한 시간들은 무엇을 위함이었을까?

 이러한 짙은 회의감 때문에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바로 책읽기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누구도 내게 간섭하지 않는 상황에서 독서를 완전히 멀리 하기에 이르렀을 때, 나는 과연 어떠한 감정을 느낄 것이며 그 비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지 관찰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그 동안 나는 책읽기에 쓰던 시간을 넷플릭스에 쏟아부었다. 아침마다 미드를 보며 영어를 익히려 노력했고, 전철을 타고 멀리 나갈 때도 미리 다운받아 놓은 영화를 보았으며, 밤에도 미드를 틀어놓고 화면은 보지 않아도 영어를 듣고 있었다. 책읽기라는 자기계발을 게을리 한다면 영어공부라는 다른 자기계발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이러한 대체는 잘 작동했다. 나는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고, 전처럼 매일같이 책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약간의 기쁨 비슷한 가벼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는 역시, 나는 어제부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의 큰 변화를 느꼈다. 새로이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에 나는 다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순간의 감동이야말로 내가 독서를 끊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물론 드라마도 영화도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해 준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책 속의 문장, 단어 하나하나에는 글쓴이의 정신 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자주 좌절한다.'는 문장과 '좌절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고, 회한이 그것을 뒷받침했다.'는 문장이 있을 때, 이 두 문장을 쓴 사람의 사고 구조는 상당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 한 글자 한 글자를 음미하며 글쓴이의 정신 세계를 짐작하고 공감하는 즐거움은 오직 독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귀한 즐거움이다.

 결론은 그렇다. 다시 선언한다. 독서는 내 인생의 즐거움이요, 이것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나의 취미이며, 누구도 내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다시 선언하자면, 읽을 책을 뺏길 바에야 나는 죽음을 택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31세의 연애의 당위성에 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