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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pr 14. 2019

그 날, 이국종 교수도 세월호를 보았습니다.

이국종, <골든아워 1,2> 독후감

- 교수님, 남해에서 배가 침몰해 들어간답니다. 안산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는데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른다, 모른다, 나도 알지 못한다, 가보라고 해서 왔을 뿐이다.' 모두가 일관된 대답을 해댔다.
- 적어도 그 배에 승객이 400명 이상 타고 있었던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중 구조된 인원이 불과 200명에도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적어도 200여 명 이상이 아직 배 안에 있는 게 맞습니다.
- 정교수, 이게 말이야.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체 내에 있었다면, 내가 바로 그 위를 비행하고 있었는데 배로 들어가든 부수든 간에 뭔가 사람들을 끄집어내려고 했을 거 아냐? 한미 해군이 모두 출동했다고 들었는데 그 선박 주위는 정말 조용했다고. 어느 정도 구조가 된 거 아니었어?
배가 다 가라앉고 나니 모든 것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돌아가는 꼴을 보며 머리가 아팠고 사지가 욱신거렸다. 속에서 욕지기가 솟아올랐다. 발밑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이게 한국 사회 기본 체력이지....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이틀 뒤, 5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세월호 참사 5주년을 앞두고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를 읽었다.

 이국종 교수는 세월호 참사 당시 헬기를 타고 날아갔고 사고 장소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현상을 목도했다. 왜 세월호에 헬기를 접근시키지 않는지, 한미 해군이 출동했다는데 왜 배 주위는 조용한지, 골든아워를 놓치고도 왜 아무도 지휘를 하지 않는 건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마지막으로 '그래.... 이게 한국 사회 기본 체력이지....'라고 절감했을 뿐이다.

 그렇게 된 것은 이 교수가 계속해서 한국에 외상치료센터를 건립하려고 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외상외과 전문이고,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외상외과를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공부했다. 그러나 한국의 보건복지부, 심사평가원, (이 교수가 속한) 아주대학교 등은 돈 잡아먹는 하마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은 늘 외과에서 올린 청구를 삭감했고, 이 교수는 적자 내는 괴물이 되었다.

 그나마 상황이 변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이 교수와 그 팀원들의 헌신적이고 꾸준한 노력이 있었고, 아덴만 호송 작전의 석해균 선장이나 북한에서 남하한 병사 등의 수술로 인해 외상외과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모두가 익히 알듯 한국 사회의 이슈는 무척 빠르게 흘러간다. 이슈를 타며 배정되었던 외상치료센터에 대한 예산이 계절이 바뀌며 무차별 삭감당하기도 하고, 이 교수가 요구한 5명의 의료진은 겨우 1명을 보충해 주는 것으로 해결되곤 했다. 그는 오랜 세월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해 왔다.

 이 책을 전부 이 교수가 썼는지는 모르겠다. 이 교수가 워낙 치열하고 바쁘게 살다 보니 이렇게 긴 글을 쓸 시간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썼다는 것만은 알겠다. 글의 논조는 단조로우면서 일정하고, 때때로 이 교수가 좋아한다는 <칼의 노래>처럼 무미건조하면서도 스산한 느낌을 피워 올린다. 그래서 2권을 읽을 때쯤이면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이래서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외상외과 진료를 할 수 없다."는 메시지다. 책의 내용대로라면 이 교수와 그 팀원들은 외상 환자들을 위해 너무나 큰 희생을 해 왔다. 이 교수는 단지 미국과 일본의 표준을 따르고자 했을 뿐인데, 그것이 한국에선 너무나 버거운 일이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교수가 말했듯 한국 사회의 기본 체력이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다. 혹자는 세계 10위권 강대국이라며, 마음에 안 들면 아프리카에 가서 살라는 헛소리를 쉽게 던지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 나은 대한민국, 더 나은 조국'이다. 단지 우리나라가 안 좋다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비전을 제시함에도 한 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관료주의와 비합리적인 결정 시스템으로 인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이 교수라는 스타성 있는 인물의 등장으로 외상외과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교수의 말처럼 돈 없고 힘없는 자들에게 정부의 시선은 향하지 않는다. 고로 아주 중요하고 유명한 인물이 오지에서 외상을 입고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고서야 이미 굳어버린 한국의 시스템이 바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을 것이다. 비관적 전망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나는 세월호 이후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을 거라고... 만약 이런 일이 또 생긴다면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바다에서 돌아가신 학생, 교사, 승객, 선원, 잠수부 등 모두의 명복을 빕니다. 계신 곳에서 편안히 지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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