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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pr 25. 2019

차갑지만 우울할 때 만나면 좋은 사람, 니체

발타자르 토마스, <우울할 땐 니체> 독후감

나에게는 항상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이 공존한다.

삶에 대한 강렬한 회의와 삶에 대한 강렬한 사랑.

이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삶이 다 의미가 없고, 이대로 확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 하나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우울할 땐 니체>.

그래, 나는 우울해서 이 책을 뽑아들었다.


책의 초장부부터 나를 압도하는 문장이 있었다.

<질병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질병은 우리의 환경, 우리에게 확실하고 안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구속하고 마비시키는 것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준다.

질병은 무조건 나쁜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건강이야말로 최고의 자산이라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는 우리들의 세계에선 말이다.

하지만 니체는 다르게 말한다. 질병으로 인해 우리는 평소 우리를 속박하던 모든 스케줄, 계획, 약속, 친구, 부모, 가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또 가치관의 전도를 야기한다. 평소 소중해 보이던 돈 같은 것들은 발톱의 때만도 못한 게 된다. 내가 아파 죽겠는데 돈 따위 알 게 뭔가? 사소하게 여겼던 편안하게 숨 쉬기, 안락하게 누워 있기가 중요한 일이 된다.

이렇게 질병조차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 바로 <우울할 땐 니체>다.


결정적으로 니체는 자기가 아팠던 시절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나의 생명력이 바닥이었던 몇 년 동안 나의 허무주의는 중단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삶에 대한 강렬한 회의와 허무주의를 갖고 사는 것도 결국 먹고 살 만 하고 숨 쉬고 다닐 만 하니까 그러는 거라는 말이다.

온몸이 아파 부서질 것 같고 오늘 저녁에 먹을 쌀 한 톨이 없다면 허무주의가 대체 뭐라고 우리의 가장 많은 포도당과 산소를 소비하는 뇌에 깃들 수 있겠는가?


행복에 대한 니체의 말도 눈여겨 볼 만 하다.

행복은 최선의 경우 수면의 한 형태이고, 최악의 경우 죽음의 한 형태이다.

수면과 죽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생각하지 않는 무의식의 상태라는 것이다. 니체는 깨어 있는 내내 행복하지 않다 생각했고, 오직 잠들어 있을 때, 생각을 멈추었을 때만 행복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던 것 같다. 


나약해진, 우울해서 이 책을 펼친 우리들에게 니체가 전하는 진심을 이미지 파일로도 만들어 보았다.

본문 중에서
본문에 대한 나의 생각

<우울할 땐 니체>에 따르면 나는 정말로 이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를 가진 게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당장 죽음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세상에 허무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비록 지금 내 눈앞에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그것을 볼 수 없기에 허무주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고로 나의 허무주의는 삶에 대한 강렬한 애정에서 기인한다. 니체도 그렇다. 니체를 마냥 허무주의자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이 책에선 발타자르 토마스는 그냥은 알기 힘든 니체의 철학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가 말하는 것의 어려움이 1000이라면 그것을 100으로 줄인다 하더라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장에는 힘과 고뇌가 담겨 있다. 그것을 천천히 곱씹어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 수 있다면 당신은 분명 허무주의를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읽고 또 읽자.

당신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커다란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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