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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Sep 15. 2019

당연히 이번 추석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았다

명절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변

 추석을 한 달 앞두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에 집에 내려가겠다고 날짜를 알려드리는 전화였는데 그 말을 꺼내기 전 갑자기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

 "이번 명절엔 어디 안 가니?"


 스무 살이 된 이후로 명절에 집에 있는 날이 잘 없었다.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12년 동안 24번의 설날과 추석이 있었는데, 다 세 보진 않았어도 적어도 절반 이상의 명절에 집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날은 다름 아닌 여행을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명절에 친척들 보러 오지 않는다며 불효하고 괘씸하다고 여기던 친척들도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이제는 내가 명절에 나타나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가 일부러 일가친척들에게 무례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나는 명절의 친척모임보다 홀로 해외에서 내 마음대로 걷는 것을 더 좋아했을 뿐이었다.


 이제 와서 하는 변명이지만(그것도 내 친척들은 아무도 이 글을 보지 않겠지만) 어릴 때부터 우리 친척들과 나의 관계가 아주 살갑고 친근하게 형성되었다면 나는 명절을 이렇게 내 마음대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명절에 친척들에게 지갑이 두둑해질 만큼 용돈을 받아본 적도 없고, 마음이 불러 터질 만큼 덕담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우르르 모여든 어른들은 각자 돈 얘기, 자식 얘기하느라 아이들에겐 관심이 없었고, 내게 명절은 사촌들끼리 작은 방에 처박혀 TV 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새삼스레 내가 명절이 귀중하다느니 어떻니 하는 소리를 하면 그게 더 웃긴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말을 하는데도 그래도 가족끼리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이 있다. 거기엔 또 내가 당당하게 할 말이 있다. 나는 나를 아끼고 보듬어준 친척들에게는 누구보다도 잘한다. 외할머니께 가장 자주 안부 전화를 드리고 용돈을 드리는 사람이 나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외할머니께 받은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친척들에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해준 것도 없으면서 이제 와서 왜 찾아요? 휴가가 모자라 명절에 여행 가는 내 뒷담 하지 마시고, 그냥 명절 즐겁게 보내십시오!

 그렇게 불효 막심한 나는 이번 추석에도 4박 5일간 몽골에 다녀왔고, 이번 명절 역시 내게 최고의 휴가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명절에 다른 아이들은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 가는데 우리 아들은 왜 그럴까 생각하며 아쉬워할 어머니 마음을 생각하면 죄송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식을 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어찌 100% 다 충족시키겠는가. 새끼 캥거루도 다 크면 저를 보듬어준 어머니 주머니를 뛰쳐나가니, 사람이 장성해서 제 갈 길을 가는 것도 당연지사라 말하고 싶다. 그래도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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