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Sep 21. 2019

내가 항상 한약을 달고 사는 이유

몸의 작은 신호도 무시하지 않기

 저녁으로 매운 떡볶이를 먹었다. 위가 살짝 쓰리고 아랫배가 묵직해질 때쯤 오덕환을 먹었다. 먹은 음식물이 소화되지 않은 채 배설될 때 쓰는 약이다. 오덕환을 먹자 통증이 잦아들었다. 나중에 변을 보았지만 설사는 아니었다. 평소대로라면 매운 것이든 안 매운 것이든 떡볶이를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폭풍설사를 했을 터였다.

 요즘 해질녘이 되면 봄에 그러하였듯 알러지 비염이 찾아온다. 눈이 피로하고 간지러워지면서 갑자기 콧물이 쏟아지고 그 탓에 재채기까지 발작적으로 터진다. 코도 풀어보고 눈도 비벼보다가 곧 참지 못하고 소청룡탕을 먹었다. 5분이 지나자 곧 가려움이 가라앉고 콧물도 멎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기 힘들고 몸이 무겁다고 느껴질 때면 비축해 둔 쌍화탕을 먹는다. XX제약에서 나오는 병에 든 제품이 아니라 동의보감의 원방대로 달인 처방이다. 시원한 쌍화탕을 먹고 나면 (개인적으로 한약을 꼭 따뜻하게 먹지는 않는 편이다. 상황에 맞게 복용한다.) 눈이 번쩍 뜨이고 다리에 힘이 생겨난다. 개인적으론 피로 회복에 이보다 나은 처방을 보지 못했다.


 나는 한의사다. 그것도 하루종일 한약을 달고 사는 한의사다. 앞서 한 이야기는 예시를 종합하고 부풀린 것이 아니다. 그저 어제와 그제 내가 먹은 약에 대해서, 그것을 왜 먹었고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있는 그대로 적었을 뿐이다. 


 한의사라는 직업은 오직 한의대를 통해서만 배출된다. 그러다 보니 한의사들은 한다리 건너면 다 아는 경우가 많고, 또 사회에서도 마주치는 일이 많다. 그렇게 많은 한의사들을 만나보면 한약을 나처럼 복용하는 한의사도 있고 아닌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명백하게 한약을 자주 먹는 편이고, 그것도 서너 개의 한약을 상황에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복용하는 편이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나는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약을 복용한다. 동의보감에는 수천 가지 처방이 실려있지만 그 처방을 한의사들이 모두 사용하지는 않는다. 광물성 약재의 경우 현대에는 독성이 밝혀져서 쓰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고, 서각 같은 경우에는 코뿔소의 뿔이라서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이 금지 된 면도 있다. 그래서 실제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처방은 100종 이내라고 짐작하는데, 적어도 그 처방들은 만약 내 몸에 그러한 증상이 있기만 하다면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과민한 대장 때문에 오덕환을 먹게 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다.

 둘째로 나는 한의학의 '불치이병 치미병'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치이병 치미병은 '이미 생긴 병을 치료하지 않고 미병을 치료한다.'는 뜻으로 미병이란 '병이 되기 전 단계의 상태'를 이른다. 감기로 치면 이미 재채기가 나오는 병적 상황 이전에 으슬으슬하고 피곤해질 때를 말한다. 말기암 치료보다 초기암 치료가 쉽듯, 병이 이미 온 상태보다 오기 전에 치료하는 것이 쉽다.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몸이 안 좋아질 기미가 있으면 서둘러 침을 맞고, 뜸을 뜨고, 한약을 먹는다. 물론 한의사라고 해서 직업적으로 이러한 치료수단만을 고집하고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나는 자극적인 음식을 멀리 하고, 술 담배는 줄였으며, 일주일에 3회 이상 꾸준히 운동을 한다.

 셋째로 한의학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양의사들이 한약을 복용하면 간에 좋지 않다고 매스컴을 통해 퍼뜨렸으며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1천명의 한약 복용자 중 6명꼴로 간독성이 나타났으며 (0.6%에 해당) 그 원인도 내재성 독성(약물 자체의 독성)보다는 특발성 독성(복용한 사람이나 당시의 환경·조건과 상관성이 높은 독성)에 기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미국 간학회지에 발표된 연구(Reuben A et al, Drug-induced acute liver failure:results of a U.S. multicenter, prospective study)에서는 미국 내 1198명의 약물성 간 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검토한 결과 항생제, 항결핵제, 항진균제 등의 서양의약품으로 인해 간 손상이 발생했다는 결론이 나온 만큼 한약보다는 오히려 대다수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양약에 대해서 간독성 우려를 표하는 게 의료인으로서 옳은 자세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러한 신뢰의 관점에서 마음 놓고 내 몸을 위해 한약을 애용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한의원과 의원을 찾는 환자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한약이 흔히 알고 있는 1제 15~20만원의 고가 한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한약도 한의원에 구비되어 있으며 그러한 것으로 소화장애, 감기, 두통, 관절통 등의 증상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니 크게 이상을 느낀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 중 불편을 느낄 때는 언제든지 한의원을 방문하시라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신호도 무시하지 않고 내 몸의 목소리를 들어주면서 사는 것, 그것이 모든 의학이 추구해야 할 예방이며 양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운동이 꼭 몸에 좋기만 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