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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Sep 24. 2019

밥 먹고 바로 화장실 가는 당신을 위한 한약

동의보감 처방, 오덕환

 나에겐 어릴 때부터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밥을 먹다 말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게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

 "넌 또 밥 먹다 화장실 가니? 더럽게!"

  하지만 밥 먹다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은 맞지만 '필요'에 의해서 가는 것이지 '취향'이 그래서 가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밥을 먹다 말고, 혹은 밥을 먹자마자 화장실에 달려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 뭐가 문제일까?


 동의보감에는 옛날 이야기만 실려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동의보감은 현대 교육을 받고 자라 해부학, 약리학, 약용 식물학 등을 섭렵한 현대 한의사들도 대단히 중요하게 참고하는 서적이다. 그 안에 놀랍게도 밥 먹고 바로 대변을 보는 것에 대한 내용이 있으니 살펴보자.

 식후에 곧바로 대변을 보는 것.
 밥을 먹자마자 곧바로 대변을 보는 것은, 비(脾)와 신(腎)이 서로 교제를 하여야 수액과 곡물이 나누어지는데, 비기는 비록 강하다 하여도 신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음식이 목을 넘어가서 대장을 거쳐 그대로 설사되어 나오는 것이다.

 비기가 어쩌고 신기가 어쩌고, 이 말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비라는 것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비장이 아니라 생각을 주관하고 소화작용을 주도하는 하나의 기능계를 일컬으며, 신이라는 것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신장(콩팥)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가진 생명 에너지를 저장하고 배뇨활동을 주관하는 다른 기능계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 비와 신이 교제가 안 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두 기능계간의 상호작용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해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선 한의학의 오장육부와 정신기혈에 관해 모두 설명해야 하므로 생략한다.

 

 일단 신기하게도 동의보감에 밥 먹고 바로 대변을 보는 것까지 언급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나면 그에 대한 치료법이 과연 존재하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보통 양방 의원에서는 이러한 증상에 대해 "과민성 대장 증후군입니다." 내지는 "장이 좀 약해서 그렇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소화제를 처방해 주고 끝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소화제를 먹는다고 해서 밥 먹다 화장실 가는 증상이 좋아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시 동의보감을 보자.

 치료법은, 이신환을 빈속에 소금을 넣고 끓인 물로 넘겨서...

 여기서 말하는 이신환은 육두구와 파고지로 구성된 약으로서 비와 신의 양기를 북돋는 힘이 있는데 나는 이 처방 말고 다른 처방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단지 밥 먹고 바로 화장실에 가는 것뿐 아니라 조금 다른 증상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증상은 음식물이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고 배설되는 것이었다. 이 역시 동의보감에 해당 내용이 실려있다.

 손설.
 손설이란 곡물이 소화되지 않고 그냥 나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손설에 창출방풍탕 등을 쓰라고 나와있지만 또다른 한의서인 방약합편에는 다른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오덕환이다.

 오덕환. 
 보골지 건강 오수유 오미자 목향.
 주치: 비신허한으로 인한 손설, 생냉한(날 것이나 차가운) 음식, 시기한습(계절에 따른 춥고 습한 기운)의 감수, 주습(과도한 음주) 등으로 비의 손상으로 복통설사, 혹은 무절제한 음식섭취로 구오통설(토하려고 하면서 아프고 설사)에 쓴다.

 역시 비신허한을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기에 밥 먹고 바로 대변 보러 가는 것이나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을 설사하는 것은 원인이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덕환을 주문해서 먹어보았는데, 이 약을 먹은 지 일주일 정도 된 지금 설사의 빈도가 확 줄고 밥을 먹다가 화장실에 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어제는 치킨을 먹었는데, 치킨은 내게 브랜드와 종류, 맛을 불문하고 먹기만 하면 화장실에 달려가 설사를 하게 되는 음식이다. 그래서 어지간히 먹고 싶을 때가 아니면 피하는 음식인데 어제 요기요에서 할인을 해 주길래 한 마리를 시켜 먹어보았더니 어제 밤에도 오늘 아침에도 배가 아프거나 설사를 하는 일이 없었다. 이만하면 오덕환의 효능은 충분히 검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늘 배가 아파서 화장실 위치를 외우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한의원에 가서 오덕환을 지어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당 한의사가 설명하기 전에 내가 미리 강력하게 한 가지 경고하고자 한다.

 이 약은 더럽게 쓰다!

 아마도 주성분이 되는 오수유 때문이겠지만, 최소 50가지 이상의 처방을 먹어본 내 입에도 이렇게 쓴 약은 정말 처음이다. 정말 약 한 봉 먹을 때마다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리게 되며, 양치를 해도 입안에 남아있는 강렬한 쓴맛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을 정도다. 내 생각에 이 약이 탕(湯)이 아닌 환(丸, 구슬 형태의 약)이 된 것도 탕으로 만들면 너무 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쓰기 때문에 절대 이 약을 먹고 한의사에게 맛에 대해선 불평을 하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나 만성 설사에 대해 오덕환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 몸의 상태에 따라 습열을 제거할 수도 있고, 비신의 양기를 올려줄 수도 있고, 속에 정체된 수분을 소변의 형태로 빼내는 약도 있다. 그러니 이 약을 찾아먹으려 하지 말고(팔지도 않으며 맛이 너무 쓰기 때문에 환자의 거부감을 고려해 일부러 처방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가까운 한의원에서 몸 상태에 대해 상담을 받고 맞는 약을 지어먹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급똥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글 한 편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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