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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03. 2019

나는 글을 살기 위해서 써요

쓰지 않고선 풀어낼 길 없는 내 안의 생각들

 얼마 전에 모르는 분께 쪽지를 받았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일상생활하시면서 그렇게 글을 쓰시는 게 대단한 것 같아요."

 아마도 본업을 따로 두고 글쓰기를 하는 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하신 듯한데,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흘려들은 말이었다. 갑자기 이 말이 생각난 것은 오늘까지 글을 안 쓰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스스로 또 한 번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일이 있을 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의 한 끝을 잡아 쓰는 것이 이 <도학선생 일기> 매거진이다. 그런데 한동안은 여기에 글을 쓰지 않았다. 연애, 취미생활, 직장생활, 살림살이 등 여러 가지 일에 마음을 분산시키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을 오래 붙잡고 있는 일이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떠오르지도 않은 생각을 억지로 꾸며내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글쟁이로서의 유송을 한동안 방치해두었던 셈이다.

 그러한 와중에도 책은 계속해서 읽었기 때문에 종종 독후감을 썼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도학선생 일기>에 올리는 글과는 완전히 궤가 다르다. 독후감은 내가 어떤 책을 읽었고 그 책에서 어떤 부분이 기억에 남았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쓴다. 왜냐하면 일 년에 겨우 40권 내외의 책을 읽는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내가 그 책을 읽었는지,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내가 그 당시에 어떤 문장에 감명을 받았고 어떤 정보를 유익하다고 생각했는지 기억해내질 못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실용적인 목적의 글쓰기다.

 반면 <도학선생 일기>는 순수하게 나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매거진이다. 사람의 머릿속(마음속이라 해야 정확할까?)에는 헤아릴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었다 사라진다. 부처께서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연기처럼 일었다 사라진다고 하신 것이 바로 그러한 생각들인 것이다. 그 생각들은 잡념이라고 불러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에 이는 것들은 안갯속에 가리어진 꽃나무와 같아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놀랍고 신선한 구석이 있기에 잡스럽다는 표현은 지양하고 싶다. 간혹 그중에는 절로 깊은 감정의 한 부분을 강타하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어쩐지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꼭 그것을 붙잡아 끄집어내서 활자로 토해내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것이, 나는 어쩌면 글로 돈을 벌어야만이 아니라 이러한 강박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글쟁이의 운명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끄집어낸 생각을 활자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는 또다시 내 마음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내 안에는 이런 감정이, 이런 생각이 잠들어 있었구나. 아, 이 생각은 옛날에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구나. 그렇게 하나 둘 깨달아가며 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한층 더 나를 사랑하게 된다. 때로는 연민하게 되고 말이다. 앞서 말한 독후감과 이런 글쓰기의 차이점은, 독후감은 공을 들여 한 편을 쓰고 나서도 아무런 개운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록을 위한 기록이지, 해탈을 위한 수양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특별한 것이 생각나지 않는단 이유로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 이상하게 몸이 많이 안 좋아졌었다. 몸이 안 좋아졌다기엔 여전히 혈색이 좋은 청년이었기에 마음이 아팠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옳겠다. 길을 걸으면서도 가슴이 답답하고, 자려고 누워서도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밥을 먹어도 맛있는 줄을 알 수가 없었더랬다. 자꾸만 무거워지는 마음에 너무나 힘들어져서 결국 견디지 못해, 살기 위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곳에 글을 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글쟁이의 열망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다. 오늘도 이렇게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며 이전의 쪽지로 들은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자니, 나에게 글쓰기는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하는 행위도 아니고 내가 대단한 사람이어서 하는 행위도 아니다. 단지 글을 쓰지 않으면 속에서 피어오르는 무수한 생각과 그 사이에 피어난 보석을 어찌 달리 다룰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쌓인 것을 토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키보드를 두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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