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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26. 2019

기억을 상실한 인간은 인간인가?

특정 시점 이후 기억상실을 겪는 증상에 대한 생각

 1949년 이후로 기억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1929년생이다. 할아버지가 된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자기가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한쪽 눈씩 번갈아 깜빡이고, 혀를 내밀어본다. 그는 한국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전쟁에서 총알을 맞아 엉덩이에 큰 흉터가 있음에도 말이다. 그는 일 분만 지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의사는 일 분마다 반복해서 설명해야 한다. 당신은 1949년 이후로 기억을 잃어버렸으며, 한 명의 아내와 세 명의 자녀가 있고, 나는 당신을 치료하기 위해 앉아있는 신경과 의사라고.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코르샤코프 증후군 환자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사람은 무엇인가?

 동물의 일종으로 이족보행을 하며 유인원에 비해 털이 적다.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특정 시각에서의 기억의 중첩'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을 기억하고, 어제를 기억하며, 십 년 전, 이십 년 전을 기억한다. 내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 것들을 기억하며 행위마다 나만의 특별한 느낌을 갖고 있다. 첫사랑이 뿌리고 다니던 향수, 처음으로 학교에서 매를 맞았을 때의 통증, 학창시절 점심시간 종이 치면 달려가서 먹던 짜장밥의 맛 같은 것들 말이다. 만약 이 기억들이 뭉터기로 사라진다면 나는 과연 그 순간에도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도덕적이길 바라는 사람들은 기억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숨을 쉬고 걸어다니고 짧은 순간이나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사람의 증거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 분 뒤,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며 우리가 나눈 대화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오직 옛날의 기억만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우리가 나는 대화는 의미를 잃고 과거의 편린 속으로 사라진다. 나에겐 존재했던 세상이지만 그에겐 사라진 세상이 되는 것이다. 한 쪽만 기억하는 세상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아니라고 하기엔 그는 이미 사람으로서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온당하지 못하다. 참 어려운 문제다. 기억의 상실과 더불어 발생하는 사람의 자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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