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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04. 2019

한 인간의 삶은 결국 가족이란 뿌리의 연장에 불과한가

김훈, <공터에서> 독후감

 인생이란 무엇인가.

 몇 번을 물어도 때마다 상황마다 다른 답이 나오는 질문이다. 최근 나는 인생을 '하루 세 끼 먹고 밤에 잠 자는 행위의 반복'으로 규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규정하면 인생이 참 단순하고 쉬워진다. 오늘 세 끼 먹었고 밤에 가서 잘 집이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적어도 직업이 있고 수입이 있는 한 어느 정도 기간 동안은 이 삶이 유지될 거라는 면에서 말이다.

 그러나 소설가 김훈은 인생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듯 하다. 적어도 이 <공터에서>를 통해 보여주는 인생관만은 나와 다르다. 그가 말하는 인생은 주인공의 외모와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주인공 마차세는 마동수의 둘째 아들이다. 첫째는 마장세다. 참 성의없는 옛날 이름이 보여주듯, 이 소설의 배경은 1940~1990년대의 근현대다. 김훈은 마씨 집안의 인물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마동수는 만주에 살았다가 한국에 살았다가 괴뢰군에 만세를 외쳤다가 국군에 만세를 외치기도 한다. 마장세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거기서 아예 괌으로 자리를 잡아버린다. 마차세는 동부전선 GOP에서 군생활을 하다 아버지 마동수의 부고를 접하게 된다.

 이 마씨 집안 남자들의 인생은 광복과 한국전쟁이 일어난 시절, 그리고 월남전이 있던 시절, 그리고 그 후의 시절로 나누어서 보면 아주 다를 것 같지만 실은 그렇게 다르지도 않다. 마차세는 마동수가 죽은 이후에도 그의 혼령이 한국을 떠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며, 마장세는 마동수의 그림자가 싫어 한국에 머무르질 않는다. 마차세의 아내 박상희는 결혼식날 마장세를 보고 깜짝 놀란다. 장세와 차세 두 형제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동수의 젊은 시절 모습은 그런 두 형제와 같다.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 식상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식상하다는 것들은 진리에 가까울 때가 많다. 가족이란 단순히 함께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가장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행동론에 따르면 결국 완벽한 독립개체로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안에는 유전적 장점과 단점이 있다. 유씨 집안의 남자들만 놓고 보면 남자들이 대개 날씬하고 단단한 몸을 가졌고 이른 나이에 병사하는 일이 없었다. 탈모도 없었고 암으로 운명을 달리하신 분도 없었다. 단점은 술의 유혹에 약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도 애주가셨고 아버지도 술을 즐기시는데 나는 그게 마냥 좋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평소 집에선 술을 마시지 않는다. 장점은 그대로 가져가고 단점은 줄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집에서 아예 술을 모두 없애버리는 강수를 둠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유씨 집안의 그림자를 느낀다. 언제든지 술에 취해버리고 싶은 그런 기분이 나의 의지가 아니라 유전자에서 나온다고 분명히 느낀다.

 <공터에서>의 마차세는 자기 가족을 꾸림으로써 어느 정도 마동수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형 마장세와의 인연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마차세에게 드리운 그림자는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다. 그것이 아마도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약간은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연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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