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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y 01. 2020

한 번도 몰입해 본 적 없는 동학농민운동 속으로

이광재, <나라 없는 나라> 독후감

 분명한 기억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보던 위인전에 전봉준 장군이 있었던 것 같다. 자라면서도 여러 번 그 이름을 들었다. 동학농민운동, 녹두장군, 새야 새야 파랑새야... 그러나 나는 단순히 농민운동을 지휘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지 실제 그 운동이 당시 사회분위기 속에서 어떠한 의미였을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고착화된 신분제 사회에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총칼 앞에 쓰러져간 농군들, 우리의 조상님들. 그들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어떻게 그 운동을 해 나갔던 걸까?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갈 순 없지만 그래도 이광재의 <나라 없는 나라>를 읽을 순 있다는 게 다행이다.

 일단 동학농민운동이라고 하면 굉장히 먼 옛날의 일처럼 여겨지지만-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사실 그 역사는 겨우 120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역사적 사건과 비교하자면 갑신정변이 1884년이고 청일전쟁이 1894년 7월인데 동학농민혁명은 1893년 말부터 1895년까지 전개되었다. 내가 굳이 갑신정변과 청일전쟁을 언급하는 것은 이들이 동학농민혁명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이 셋이 엮여있는 사건인 줄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 겨우 120년이라고 하면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여기서 내가 한 가지 더 놀랄 만한 점을 소개하자면 10만 원권 지폐가 나온다면 응당 이 사람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김구, 우리의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1800년대와 1900년대는 김구 선생으로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라 없는 나라>는 조병갑을 퇴출해 낸 1차 동학농민운동의 이후부터 전봉준과 대원군을 통해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데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외세 퇴출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봉준은 외세가 들어오면 나라가 망하여 백성들이 힘들어지니 그것을 막고자 하였고, 대원군은 왕가를 지켜야 하니 외세를 들어오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서 신분제와 왕권에 대해서 입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는 전봉준과 대원군이 협력하는 관계로 나오는데 역사적으로도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1차 봉기를 성공시킨 후 그 이전의 조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백성의 참정권을 주장하고 있었던 전봉준과 주변인들이 다시 2차 봉기를 준비하는 모습은 사뭇 비장하고 안쓰럽다. 이미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던 청국과 왜국의 무기는 압도적으로 뛰어나고 병력도 많은데, 동학농민군은 노획한 무기가 전부인 데다 그마저 모자라 죽창을 꺾어 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총구 앞으로 돌진한다. 바람 앞에 눕는 풀처럼 스러지는 한 농민군의 최후에 대고 녹두장군은 말한다.

 "그대가 목숨 걸고 나선 길이오. 의심하지 마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후세가 기억할 것이다. 다음 세상의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줄 것이다."

 


 야속한 일이지만 사람은 환경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다.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은 겨울을 알지도 못하고 피부에 닿으면 녹아내리는 서늘하고 흰 물질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으며, 한대지방에 사는 사람은 추운 바람을 쌩쌩 뿜어내는 직육면체의 기계 따위는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사고의 틀을 깨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놀라운 것이다. 전봉준은 왕권 사회에서 백성의 참정을 꿈꾸었던 혁명가였고 외세의 칼날에 저문 독립운동가였다. 동학농민군이 무너진 후 결국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승리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탈하게 되었으니 일제의 지배가 실효되기 전 벌어진 마지막 독립운동이라고 어찌 말하지 않으랴.

 예전 월가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거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은 1%의 금융 거부들이 전체 부의 50%를 차지하는 현실에 저항하자는 의미로 일어났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의 편중에 대해서 평소 거부감을 갖고 살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누구의 주머니에는 쓰지 않는 300억이 있는데, 누구의 주머니에는 라면 사 먹을 3천 원이 없어 굶는다는 현실이 너무도 밉고 바꾸고 싶다. 이런 현실을 바꾸자는 의미에서 일어난 월가 점령 운동도 실은 동학농민혁명과 그 성격이 같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당연하게 부자의 지배를 받아들일 때, 좀 더 부의 분배를 공평하게 하자는 혁신-현재의 흐름에 저항하는 의미에서-적 발상이었던 것이다. 비록 월가 점령 운동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끝났고, 동학농민군도 소멸했지만 실패했다고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금 우리의 행위를 제한하는 질서 속에 어떤 부조리함이 있는지 늘 살피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간 동학농민혁명과 전봉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음을 깊이 반성하며 이 독후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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