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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n 26. 2020

세상 가장 글 잘 쓰는 신경의의 흥미 넘치는 자서전

올리버 색스, <온 더 무브> 독후감

 다른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의 삶뿐이며, 세상은 나 자신만의 삶을 경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엔 너무나 많은 즐길거리, 놀거리, 볼거리 따위가 널려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자서전을 통해 그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보고 내 삶의 경계를 넓힐 수 있을 때 나는 기쁨을 느낀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신경의 올리버 색스일 경우에는 두말할 나위 없다.

 예전에 이미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뮤지코필리아>를 읽은 적 있지만, 그것이 곧 작가의 삶을 이해하는 행위는 아니다. 내 머릿속의 올리버 색스는 하얀 수염을 기른 보통 체구의 백인 할아버지였는데 <온 더 무브>를 읽고 나서 그 백인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에는 무려 스퀏 260kg를 기록한 보디빌딩 마니아였고 암스테르담에서 첫 경험을 한 동성애자이자 마약에 찌든 적이 있는 약쟁이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연속적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의사라고 의사로 태어나는 게 아니고, 요리사라고 요리사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매우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사람-성인인 사람-을 처음 만나면 그 사실을 잊고 그 사람은 원래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자라온 마냥 대하게 된다. 물론 올리버의 경우 부모님이 두 분 다 의사였음이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주기는 했을 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보디빌딩, 오토바이, 마약, 동성애 같은 올리버의 모든 취향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심지어 동성애자인 것에 대해서 올리버의 어머니는 가혹한 말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온 더 무브>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저자의 솔직함이다. 70년 넘게 살았다 치고 자기 인생의 자서전을 쓰라 했을 때, 과거를 뒤돌아봐 부끄럼 한 점 없는 이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만인의 앞에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런 반면에, 그런 용기가 있는 자만이 최고의 자서전을 써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런 면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최고의 자서전을 써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자신의 일기를 바탕으로 구체성을 쌓아 올리고 오랜 시간 인간으로서 닦아온 자신의 솔직함을 합쳐 우리에게 자신의 내면을 아름다운 글로 드러낸 것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신경의라는 직업은 의사 중에서도 정말 특이한 직업이다. 뇌에 이상이 생긴 환자들은 평소 우리가 전혀 접하지 못하는 돌발적인 행동이나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번개를 맞고 갑자기 작곡을 하게 된 남자라든지, 책의 제목처럼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남자라든지 이런 환자들을 대체 살면서 몇 번이나 보겠는가? 실은 의학에서도 변두리에 갇히기 쉬운 이런 환자들의 이야기를 진솔하면서도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저자의 의학사에 대한 공은 지대하다. 물론 누구도 쓴 적 없는 이야기를 다룸으로 인해 스타덤에 오른 저자에게도 행운이 따랐다는 말을 붙일 법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신경학적인 증상을 지닌 환자들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우리의 지각과 감정, 행위가 모두 뇌에 기반한 것이라면 종국에는 뇌를 조절함으로 인해 대부분의 병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다소 무리한 상상도 해 보았다. 하지만 통 속의 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결국 우리가 뇌를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는 골격 껍데기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저자가 말했듯 저자가 신경의로 일을 시작한 1965년에 비해 2020년의 신경의학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우리의 앞날에는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은 제2의 올리버 색스가 나타나 우리에게 또 재밌는 책으로 알려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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