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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l 01. 2020

애서가들의 지상낙원을 상상한 발터뫼르스의 판타지 역작

발터 뫼르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독후감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편의 멋진 판타지 소설을 쓰길 소망한다. 판타지 소설이란 무엇인가. Fantasy. 그것은 환상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물을 때 누군가는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상상을 하는 동물이라고 답하겠다. 현재와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컴퓨터, 자동차, 인터넷 따위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이 뛰어난 인간은 인류의 진보를 이끄는 선지자인 동시에 판타지 작가로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처음 <꿈꾸는 책들의 도시(이하 '꿈도시')>를 펼치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에의 이끌림 때문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나로선 책들의 도시라는 제목 자체가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난데없는 공룡 주인공이었다. 이게 판타지 소설인 줄도 모르고 펼쳤던 나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소 지루한 도입부를 견디며 꾸역꾸역 읽어나갔다. 주인공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어려운 이름 같지만 꿈도시를 다 읽을 때쯤엔 저절로 외워지는 신기한 이름이다)는 겨우 일흔 살 남짓 먹은 어린 공룡이다. 그는 공룡인 동시에 작가 지망생이며 단첼로트라는 대부시인을 두고 있다. 어느 날 이 대부시인이 죽음을 앞두고서 힐데군스트에게 한 원고를 보여주는데 그 원고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뛰어난 문장들이 실려있다. 주인공은 이 원고는 보고 울기도 하며 웃기도 하며 동시에 자신이 작가로서 얼마나 얕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꿈도시의 모험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힐데군스트는 대부의 유언에 따라 신비의 원고의 작가를 찾기 위해 떠난다. 그가 도착한 곳이 바로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이라는 곳이다. 작가 발터 뫼르스의 놀라운 상상력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새로 나온 책, 오래된 책, 유명한 책, 잊힌 책 할 것 없이 모든 종류의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그야말로 무덤처럼 쌓여있는 곳이 바로 부흐하임이다. 길에선 몸에 책을 두른 난쟁이들이 걸어 다니고 또 어떤 이들은 비싼 책을 찾아 매일 서점을 뒤지고 다니기도 한다. 또 어떤 시인은 인기를 잃고 몰락해 구덩이에서 살아가기도 하는데, 지나가는 관광객이 얼마간의 푼돈을 쥐어주면 즉석에서 시를 지어주기도 한다. 이곳을 책들의 도시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 부르랴.

 꿈도시의 전개 속에서 우리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을 계속해서 마주치게 된다.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것 같아 자세히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그가 만들어낸 부흐링족, 그림자 제왕, 노루개 등 모든 것은 생소하면서도 매력이 넘치지 않는 것이 없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판타지의 이상이라고 느꼈다. 새로운 세계의 창조. 그러면서도 현실 속의 인간들이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적절한 상상의 제약. 그리고 뒤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지는 전개.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발터 뫼르스는 꿈도시에서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미상의 원고를 소재로 삼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의 소설이야말로 그 미상의 원고처럼 완벽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까? 머나먼 이국에 사는 그에게 한 줄의 팬레터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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