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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Sep 18. 2020

인간은 왜 과식을 하게 되었는가

키마 카길, <과식의 심리학> 독후감

프로이트는 문명의 근원적 모순은 우리가 불행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문명이 동시에 불행의 가장 큰 근원이라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는 욕망, 곧 쾌락 원칙을 충족시키지만 사회가 사회의 이상을 위해 우리에게 안겨준 좌절 때문에 우리는 신경증을 앓는다. - 본문 중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문명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생산하고 소비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발전하며 잉여자본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치품이 그 잉여자본을 흡수하게 되었다. 사치품을 가졌다는 것은 높은 사회계층이라는 뜻이었다. 신분제가 폐지된 후에도 사람들은 높은 계층에 오르고자 사치품을 샀다. 사치품뿐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것, 최신형의 물건이 있으면 사들였다. 그렇게 우리는 '소비주의'에 함락되었다.


소비주의 문화에서 공급이 수요를 창조하는 방법은 채우지 못한 욕망을 채우려는 소비자에게 유혹적인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는 일시적 만족을 위해 구입할 상품과 앞으로 출시될 상품이 끝없이 다양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욕구와 욕망은 ‘끝도 만족도 모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 본문 중

 좋은 물건을 가지는 데 끝이 있을까? 갤럭시 S3이 나왔을 때 정가로 구입한 사람은 지금 무슨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을까? 내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을 때 첫 자전거는 30만 원짜리 하이브리드 자전거였지만 지금 내가 가진 것은 200만 원짜리 로드 자전거이며 이런 소유의 현주소에서 나는 휴대를 위해 200만 원짜리 접이식 자전거를 사면 어떨지 고민하고 있다. 물론 접이식 자전거를 산다고 해서 나의 소비지향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채워지는 소비자의 욕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경과학자들과 동물행동학자들이 설탕의 잠재적 중독성을 연구했는데, 몇몇 연구는 실험실 쥐들이 코카인이나 심지어 헤로인보다 설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결과는 인공 감미료 수크랄로스로도 반복 검증되었다. - 본문 중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설탕을 섭취한다. 먹는 음식마다 설탕이 들지 않은 게 없지만 그것에 대해서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설탕은 단지 칼로리를 쉽게 섭취한다는 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포만감을 제공하지 못해 계속해서 음식을 더 먹게 만든다는 것이-과식을 유도한다는- 설탕 섭취의 문제다.


주류 심리학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소유물, 또는 고고학자들이 물질문화라 부르는 것이 우리의 행복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주로 다루지 않는다. 물건을 손에 넣으려는 욕망, 물건에 대한 애착, 물건을 쌓아두고 관리하는 부담, 물건을 없애는 어려움은 심리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

 소비에 중독된 사람은 과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낮시간 중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며 돈을 번 직장인은 그 돈을 사용할 때 비로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우리가 소비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그 스트레스는 건강한 방향으로 해소되어야만 했다. 가족 및 친구 같은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숲길을 걷는 것으로도 해소될 수 있는 게 스트레스다. 하지만 소비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인간은 그런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다. 그저 돈을 쓰는 게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 방편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를 행하는 FLEX가 유행하는 것만 봐도 이 사회가 얼마나 소비를 권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소비와 과식 이외의 다른 보상기전을 찾지 못하면 지갑은 자꾸 비어 가고 배는 자꾸 나올 수밖에 없다.


심리적 차원에서 소비주의에 저항할 때 우리는 정치와 경제, 문화 수준의 소비주의와 여전히 충돌한다. 쉽게 말해 의지력이나 훈육, 행동을 바꾸는 것만으로 과식을 멈추는 게 가능했다면 나는 이 책 대신 자기 계발서를 썼을 것이다.

 문제는 혼자서는 이러한 사회에 맞서 정신 차리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TV에서는 이제 대놓고 PPL을 보여주며 액상과당이 잔뜩 든 음료를 선전하고, 마트에 가면 눈 돌아가게 맛있어 보이는 설탕과 지방의 결합물들이 눈길을 잡아끈다. SNS에선 친구가 연예인이 선전한 최신 화장품을 샀다며 자랑하고, 카카오톡으로 오늘도 배달메뉴를 할인한다는 메시지가 날아온다. 이런 환경에서 해탈한 스님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특이한 것이지 그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소름 돋는 일이 있었다. 내가 책을 읽다 말고 자꾸만 네이버 쇼핑 코너를 클릭하며 살 만한 게 있는지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요에 의해 사야 할 물건이 있다면 그 물건만 검색해서 사면될 일이지 온갖 물건을 광고하는 네이버 쇼핑 코너를 둘러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나 역시 금액만 크지 않다면 소비가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거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무의미한-나를 과식 경향으로 유도한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 소비주의 문화의 거대한 함정에 빠져버렸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작가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 나가자고 한다.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사려고 검색했던 새 캠핑 랜턴에 대해서는 구매 의사를 접을 수 있었다. 내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또 다른 유혹이 밀려든다. 정말 우리가 지독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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