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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11. 2020

레닌의 키스라니, 나는 이미 제목에 홀려버리고 말았다

옌렌커, <레닌의 키스> 독후감

 세상 살면서 이런 제목의 소설을 접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자주 들어서 친숙하긴 하지만 사실 누군지는 잘 모르겠는 '레닌'. 대충 사회주의의 영웅 뭐 그런 이미지만 떠 오릅니다. 남자, 마초, 수염, 러시아, 공산주의. 그런데 여기다 '키스'를 갖다 붙여 놨네요. 대체 이 소설은 무슨 내용일까요?

 제목도 범상치 않지만 사실 내용은 더욱 해괴합니다. 팔십일만 주민의 지도자인 현장(우리나라로 치면 광역시장쯤 되겠군요)은 현의 부흥을 위해 엄청난 발상을 해냅니다. 그건 바로 레닌의 유해를 사서 자기 현에다가 안치하자는 것이죠. 마오쩌둥 기념관이 잘 되듯 레닌 기념관도 잘 되지 않겠냐 이겁니다. 외국인의 유해를 사서 안치한다니 정말 해괴한 생각이지만 나름 일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은 정말로 진지하게 진행됩니다.

 소설의 무대는 중국,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는 서우훠 마을입니다. 예상했겠지만, 이 마을 역시 결단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이 마을은 장애인들의 마을입니다. 정부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장애인들이 모여 살게 되었죠. 장님, 귀머거리, 앉은뱅이, 절름발이 등 온갖 장애인들이 다 있습니다. 이 마을의 우두머리는 마오즈 할머니입니다. 이 할머니는 어떻게 우두머리가 되었을까요?

 여기서 작가의 뛰어난 능력이 발휘됩니다. 아무렇지 않게 집어넣었던 인물에게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그러나 알고 보면 누구나 생각했을 법한 과거를 길어 올리는 것이죠. 마오즈 할머니는 홍군 출신입니다. 일본을 상대로 싸우던 용감한 군인이었던 마오즈 할머니는 우연히 서우훠 마을에 살게 되고, 그곳에서 중국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죠. 

 산속에서 어느 현에도 속하지 않아 세금도 내지 않고 행복하게 농사짓고 살던 마오즈 할머니는 (대약진 운동의 일부인) 농업 집단화를 목격하고서 현에 속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현에 가입하고 나서 초기에는 협동적 농업을 통해 많은 수확을 거둡니다. 그러나 곧 어둠이 닥쳐옵니다.

 역시 대약진 운동의 일부였던 토법고로. 쉽게 말하자면 중국 정부가 강철 생산량을 늘리고자 했던 운동을 말합니다. 이 운동의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서우훠 마을의 주민들(장애인들)은 철로 된 모든 것을 빼앗깁니다. 철로 된 농기구, 수저, 냄비, 나중에는 반지 하나조차 남지 않죠.

 이걸로 끝이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대약진 운동의 결과로 대기근이 발생하죠. 무려 3천~5천만 명이 사망한,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근입니다. 서우훠 마을은 원래 자급자족이 가능하던 풍요로운 마을이었지만 각지에서 몰려든 정상인들에게 저항다운 저항도 해 보지 못한 채 자기들 먹을 것을 다 빼앗기고 결국 주민 일부가 굶어 죽게 됩니다.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 마오즈 할머니는 이 모든 게 현에 가입하고자 했던 자기 때문이라고 책망합니다. 

 옌렌커가 역사를 자연스럽게 소설 속으로 끌고 오는 능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1900년대 중국의 대약진 운동 속에서 고통을 겪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세에 눈먼 현장, 그런 현장이 밉고 야속한 아내, 마을에 혁명을 불러오고자 좋은 의도로 현에 가입한 마오즈 할머니 등 모두가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더욱 실제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소설 같습니다.

 결국 현장은 레닌의 유해를 구입해서 현을 번영시키는 데 성공했을까요? 사실과 허구의 사이에서 잔인할 정도로 사실 쪽으로 기대 선 이 소설을 직접 읽고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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