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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r 03. 2016

지하로 들어간 사람들

제니퍼 토스, <두더지 인간들> 독후감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뉴욕 지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들으면 궁금해하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만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논픽션 책들은 일종의 포르노그라피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없지 않나 싶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세상에 대한 내 태도와 행동에 어떠한 변화가 창출될 수 있는가 생각했을 때, 그 정도의 영향력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저자 제니퍼 토스는 뉴욕의 지하인들을 취재해서 이 책을 냈는데, 한 가지 알아둘 점은 취재의 시기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해설자에 따르면 "토스는 1990년대 초 LA타임스의 뉴욕 지사 견습기자로 일하던 당시 취재한 노숙자들 인터뷰 내용에 기초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러니 거의 20년 이상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두더지 인간들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른다는 점을 감안하고 봐야 할 것이다.


두더지 인간들은 왜 지하로 들어갔나?

간단하게 말하면 그들은 지상에서 살 기반도 이유도 의지도 없다. 대부분이 부모의 학대를 받고 자라다가 학교를 중퇴하고 거리를 배회하던 도중 마약을 접하게 되어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자들이다. 게 중에 재기의 의지가 있는 자는 없지 않으나 다시 지상으로 올라간다 하더라도 며칠 버티지 못하고 곧 돌아가고 만다. 이미 지하에서의 삶에 익숙해져서 각종 '규율'을 지키며 '좁은 방'에서 살아야 하는 지상의 삶에 다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두더지 인간들은 더럽고 축축한 지하에서 살아간다.

두더지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우리들 지상의 인간이 생각하기에는 두더지 인간이라 하면 대충 지하 1층 정도에 사나 보다 싶겠지만 실은 뉴욕시의 지하는 그보다 훨씬 광대하고 깊다고 한다. 무려 지하 7층이라는 개념도 있다고 하는데, 처음에 노숙을 시작한 자들은 지상과 지하를 오가며 생활하고, 거기서 더 암화(暗化)하면 더 지하로 내려가는 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그래서 엄밀한 의미에서 두더지 인간은 지하 1,2층에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으로서는 접근하기조차 힘든, 빛 한 줌 새들어오지 않는 지하에 사는 인간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들의 생활을 간단하게 묘사하기는 힘들지만 음식은 지상의 식당 주변 쓰레기통을 뒤져 얻거나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고, 생필품은 역시 버려진 것을 주워서 쓰며, 물과 전기는 지하의 배수관과 아직 전기가 공급되는 전선 등을 통해 얻는다고 보면 된다. 그러면 아주 거지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게 중에는 드물게 지상에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종종 지하로 내려와 마음의 안식을 찾는다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많은 사람의 인터뷰가 실려있고 제니퍼 토스의 취재 도중의 고충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남은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감동도 없고 교훈도 없다. 그저 지상에서의 삶에 실패한 낙오자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혹시나 자유에 대한 원대한 갈망이 있어 그런 게 아닐까 하는 기대도 조금은 있었지만, 인터뷰를 보면 이들은 신 포도 이야기처럼 지상을 대하고 있었다. 즉,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능력이 없기에 지상을 '감옥'으로 규정하고 멀리 대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볼장 다 본 낙오자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입맛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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