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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r 21. 2021

평생 원룸에 살아도 괜찮다

 한 유튜버에 따르면 작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그리고 코인시장)에 대거 유입되는 것은 FOBA 때문이라고 한다.

 Fear Of Being Alone.

 혼자 남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남들은 다 돈을 복사하고 있을 때 홀로 열심히 일해 월급만 타는 게 바보처럼 느껴지는 지경이 돼 버린 것이다.


 부동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작년부터 이어진 패닉바잉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FOBA의 영향이다. 달리 말해 요즘 우리 언론에서 말하듯 '벼락거지'가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저축했을 뿐인데, 집 한 채 사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지가 되었다.'


 똑같이 자산 5억이 있었던 사람 둘이 있었다고 하자.

 한 명은 10억짜리 집에 70% 대출을 받아 7억 대출을 끼고 현금 3억을 들여 아파트를 샀다.

 한 명은 그냥 5억을 현금으로 쥐고 월세 60만 원짜리 오피스텔에 살았다.

 이렇게 가정하면 아마 두 사람의 자산 격차는 15억 이상일 것이다. 10억짜리 집이 거의 두 배로 올랐을 테니 말이다. 

 누군가는 집을 샀기 때문에 20억 부자가 되었고, 누군가는 안 샀기 때문에 그대로 5억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참 억울할 법도 하다. 그러니 옛날에 아파트를 사자고 했는데 안 샀다고 부부간에 싸움이 나고, 심지어는 살인까지 나는 것이다.


 나는 전용면적 19.8m2의 원룸에 산다. 성인이 된 후 가장 큰 집에 살았던 것은 공중보건의 시절이었다. 그때는 보건지소의 2층에 살았는데 방이 4개나 되는 관사였다. 물론 다른 공중보건의들과 같이 살았기 때문에 방은 하나만 사용했지만 그래도 거실이 따로 있는 큰 집에 산 것은 그때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시간, 그러니까 성인이 된 후 13년 중 단 3년을 빼고 10년 간 나는 오직 원룸에만 살았다. 그중 가장 큰 집은 40m2 정도 되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지금 내가 사는 집은 19.8m2다. 평수로는 6평 남짓. 너무 작다고 생각되는가?


 부동산이 앞으로 오를 것이냐 내릴 것이냐 하는 문제를 떠나 사람들은 상당히 짙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지금 아파트를 사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부양가족이 여럿인 경우에는 이해가 된다. 4인 가족이 원룸에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 혹은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부부가 집을 사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것을 보며 나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저 사람은 한 번도 원룸에 살아본 적이 없나? 만약 원룸에 살아본 적이 있다면, 이미 살아본 경험이 있으면서 어째서 반드시 큰 집이 필요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일까?


 글쎄, 살아감에 있어서 짐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나와 달리 어떤 사람은 점점 더 많은 것을 갖추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계절별로 한 벌의 옷이 아닌 열두 벌씩의 옷이 있어야 하고, 운동화도 2켤레, 등산화도 2켤레, 슬리퍼도 2켤레, 그리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든 전자기기, 거기다 수백만 원짜리 침대와 소파, 거기다 아름다운 경치가 보이는 거실과 두 사람이 들어갈 수도 있는 커다란 욕조, 그런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


 고백하자면 나도 올초에는 꽤나 FOBA에 시달렸다.

 나도 호갱노노 사이트를 통해 주변 부동산 시세를 확인했다.

 내가 살 수 있는 집이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몇 년이나 되었는지, 주차공간은 넉넉한 지 확인하고서 54m2, 그러니까 16평 아파트를 사야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 아파트는 산자락을 끼고 전철역 옆에 있어서 전철을 타기도 편했고 등산을 하기도 좋았으며 신축 아파트라 주차공간도 넉넉했다. 16평 아파트를 멋지게 꾸미고 사는 30대 전문직 남자라, 멋지군! 이렇게 생각하며 히죽히죽 웃기도 했다.


 그런데 3억이라는 돈의 가치와 또 내가 여태 살아온 길을 돌아보는 중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 16평 아파트가 내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인가?'

 한참 생각해보았는데 결론은 '있으면 좋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물건이었다.


 물론 지금 원룸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지는 않다. 

 우선 절대적인 공간의 부족함은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다. 내가 가장 불만스럽게 여기는 공간의 부족은 홈트레이닝을 할 때 드러난다. 베란다를 제외하고 5평의 공간에 조립식 옷장 하나, 책상 하나, 침대 하나를 두고 나니 남는 공간은 겨우 사람 한 명이 누울 만한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아령운동 정도는 가능하지만 매트를 깔아놓고 하는 요가조차도 불가능하다.

 공간 부족은 화장실에서도 문제다. 사람 한 명 설 공간밖에 없는 화장실에선 격하게 샤워를 하다가 벽에 팔꿈치를 부딪치기도 하고, 볼 일을 보고 일어서다 무릎을 부딪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내가 별로 욕조에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주방과 침실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쉽다. 침대에서 정확히 두 걸음을 걸으면 부엌인데(그래봐야 한 공간 안에 있지만) 음식을 하면 온 집안에 냄새가 진동해 마음껏 음식을 해 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 집이 더 크면 좋겠고, 집에서 차 마실 때 좋은 경치를 볼 수 있게 거실에 탁 트인 창이 있으면 좋겠으며, 좋은 경치를 볼 수 있게 층은 높으면 좋겠고, 드럼을 설치할 수 있도록 완벽한 방음시설이 된 방이 하나 딸려 있으면 좋겠고, 서재도 하나, 운동기구를 두는 방도 하나, 거기다 손님이 오면 묵을 방까지 하나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벌써 방 4개에 경치 좋은 아파트가 필요하다.


 만약 내가 방 4개에 경치 좋은 아파트를 갖게 되면 나는 모든 것에 만족하며 살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월급 200 받던 사람이 300만 받으면 좋겠다 소원하지만, 300을 받는 사람은 400을 받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400을 받는 사람은 500을 받으면 좋겠다고 소원하는 것처럼 때로(혹은 언제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내가 그런 욕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작은 원룸의 크기만큼만 욕심을 내며 사는 것은 어떨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이런 집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앉아서 컴퓨터 할 수 있는 책상,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는 베란다와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 샤워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행복하다.


 여태까지 대궐 같은 집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계속해서 원룸에 살았고, 그 안에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참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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