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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l 28. 2021

어떤 인생이 잘 산 인생인가

 어떤 인생이 잘 산 인생일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고민해 본 주제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죽는 그 순간에 만족하면 잘 산 인생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식이 잘 되면 잘 산 인생이라 한다. 아마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그 답은 다양하지 않을까 한다.

 정답을 찾기는 어렵고, 내가 죽기 전까지는 내 인생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어렵다. 다만 각자 인생의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읽고서 그들의 인생을 통해 정답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김용의 <천룡팔부>는 그런 면에서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이하 내용 중 스포일러가 많으니 원치 않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천룡팔부>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모두 개성이 넘치고 각자 인생에서 중시하는 바가 다르다. 대표적인 인물만 나열해보자면,

 단예: 얻은 것은 황위와 인덕, 이루지 못한 것은 사랑.

 소봉: 얻은 것은 명예, 이루지 못한 것은 사랑.

 허죽: 얻은 것은 사랑, 이루지 못한 것은 해탈(수행).

 모용복: 명예를 좇았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실성.

 단연경: 자식을 얻었으나 자식에게 인정받지 못함.

 단정순: 사랑을 좇았으나 회한 속에 운명.

 아자, 유탄지: 한평생 집착만 하다 운명.

 등으로, 결국 모든 것을 다 얻은 사람은 없었다. 또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각자 처음에 원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얻은 바가 많으므로 인생의 경로가 뒤틀렸다고도 할 수 있다. 허죽은 고승이 되고자 했으나 파계하여 환속하게 되었고 단예의 눈에는 왕어언뿐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사랑이 심마임을 깨닫고 집착하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김용의 소설이 아직도 인기를 끄는 것은 파격적인 소재와 시원시원한 전개는 물론이고 그가 만들어낸 다양한 인간 군상이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소설도 독자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키지 않고는 성공한 바가 없으니 말이다.


 <천룡팔부>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 가장 먼저 내가 생각한 것은 인생의 무상함이었다. 우리가 인생에서 좇을 수 있는 가치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사랑, 어떤 사람은 명예를 좇는다. 그리고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겨난 작은 오해가 인생 전체를 틀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삶은 속세의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불교의 기반은 인도 철학이고, 인도 철학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에서도 속세의 인간은 젊은 시절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데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삶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는 자유에 맡겨져 있다. 하지만 전적으로 자유에 맡겨져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생존이 1순위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람도 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모든 인간의 삶에 필연적으로 고통이 동반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의식주가 보장된 상황에서는 가치 선택이 자유로울까? 그에 대한 답 역시 '아니오'인 것 같다. 지하 단칸방에 사는 사람에게 1층 집을 주면 처음에는 좋아하지만 1층이 익숙해진 뒤에는 조금 더 전망이 좋은 집을 원하게 된다. 전망이 좋은 집에 사는 사람은 조금 더 큰 집을 원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아무리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해도 어떤 사람은 끊임없는 부를 탐하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옳은 가치라면 그것을 추구하는 행위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인생은 의미를 위한 것인가? 그 의미라는 것은 사실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평생 한 번도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삶을 살기로 했고, 그것을 평생 지킨다 해도 그것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그 사실은 내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편하게 눈을 감게 해 줄 것이다. 남들이 그것을 아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남은 내 인생의 모든 부분을 알 수 없으며, 내 대신 내 인생의 고통을 분담해주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내 인생을 평가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나 자신뿐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면 내 인생은 보다 주체적이고 자유롭게 변할 수 있다. 내가 기준을 정하고 내가 평가하고 내가 견뎌낸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홀로서기를 해 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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