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Jul 29. 2021

사실 우리의 모든 고통은 문명화 때문이었다?

크리스토퍼 라이언, <문명의 역습> 독후감


작가 아서 밀러는 “한 시대를 떠받치는 망상의 효력이 떨어질 때 그 시대는 끝난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 시대를 떠받치는 망상은 당연히 ‘발전’이고, 그 망상도 이제 수명을 다했다.

 저출산 위기라고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아이를 낳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큰 위기라며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겠다고 하지만 젊은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깟 돈 좀 준다고 내가 애를 낳을까봐? 흥!'. 어떤 젊은이도 미래가 희망차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문명의 현주소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TV와 신문을 통해 이것이 문제다 저것이 문제다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모든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문명의 역습>에 실린 저 서두와 같다. 나는 인류의 시대가 끝나간다고 느끼고 있다.


 우리는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기술은 정말로 눈이 부시게 발전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인류가 달에 간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겼는데 며칠 전에는 민간인 우주관광의 물꼬가 트였다. 겨우 3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다른 것은 어떠한가. 어릴 때는 머리통보다 큰 모니터를 두고 컴퓨터를 해야 했는데 이제는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으로 옛날 디지털카메라보다 훨씬 좋은 사진을 찍고 전화를 하고 인터넷까지 한다. 기술에 있어서는 절대 퇴보를 논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한 인류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은 기술을 말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은 어떠한가? 여전히 세계에는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고 각지에서 종교 따위를 빌미로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2020년 2월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고통받고 있다. 이제 백신접종률이 올라가니 끝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전문가는 또다른 전염병이 곧 출현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끔찍한 소리지만 나는 그에게 동의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발전시킨 문명이란 것의 본질이 그러한 괴물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라이언은 <문명의 역습>에서 우리가 항상 좋은 것이라고 여긴 문명의 민낯에 대해 이야기한다. 신홉스주의자들은 항상 문명이 고마운 것이고 다행스러운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저자는 그들에게 도대체 문명화를 통해서 좋아진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빈부격차는 나날이 커지고, 새로운 전염병이 퍼지고, 전쟁이 끊이지 않으며, 심지어 식량난조차 해결하지 못했으며, 지구온난화로 인해 몇 년 안에 다 죽을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문명화가 아니었으면 시작도 되지 않았을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을 하면 꼭 나오는 반례가 의학의 발달이다. 의학이 발달해 암도 정복하게 되었고 항생제로 인해 예전에는 쉽게 죽던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그 말에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인류가 반드시 오래 살아야만 하는가? 모든 생명이 자신의 운명에 따라 살아가고 죽어가는데 어째서 인간만 특별히 죽음을 거부하며 싸워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 '인간도 생물인 이상 자연스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저자에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고, 죽음이 너무나 두렵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전자의 입장에 선 인간으로서 이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리고 죽음의 뒤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짐작할 수도 없는 세계다. 겪어보기 전에는 어떤 토론도 무의미하다. 고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살아있는 시간뿐이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을 삶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의미있다고 여기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그것이 삶이다.


 하지만 겉보기에 별 문제없는 바로 지금도 현대인들은 불안에 시달린다. 대부분의 20대는 학자금대출을 가지고 있으며, 30대와 40대는 주택융자를 갖고 있다. 50대는 자녀부양에 많은 돈을 쏟아부어야 하며 60대 이후에는 수입원이 없다. 즉,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빚을 지지 않고 살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뜻이다.

 나 역시 적지 않은 돈을 벌고 있지만 그만큼 적지 않은 액수의 대출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자유롭게 쉬지 못한다. 빚이 없이 예금만 있으면 아마 한두달 정도는 아주 마음 편하게 쉴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에게 그런 휴식은 사실 사치라고 할 수 있다. 언제 내가 아파서 돈을 못 벌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언제 가족이 아파서 큰 돈이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을 포함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문명화 이전에는 이런 종류의 불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남아있는 원시형태의 부족들도 이런 불안은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대해 생각할 지는 몰라도 교통사고, 파산, 이혼, 암에 대해 걱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스마트폰이 없기에 한밤중에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리란 불안없이 숙면을 취하며, 대출을 갚기 위해 억지로 일터에 나가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문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가난은… 사회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빈곤이 없으면 국가나 공동체가 문명 상태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며, 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없으면 노동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부유층이 재산도, 세련됨도, 안락함도, 이익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신홉스주의자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문명의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을 보라. 어느 누구도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문제를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전에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듯이 각지에서 전문가들이 튀어나와 이제는 탄수배출을 줄이고 뭐든지 자연보호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정말 우스운 꼴이지만 결국 그들이 말하는 기술의 발전이란 것은 상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기술이 더 발전하면 코로나가 해결되리라고 말한다. 맞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다른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이다. 이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 면도날 위를 걷는 것 같다. 한쪽은 경제와 생태가 완전히 붕괴하면서 온갖 종말론적 현상이 난무하는 상황이고, 다른 한쪽은 과학기술과 인간의 몸이 계속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의 창조물에 의해 우리가 노예가 되거나 흡수되는 상황이다.

 앞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확실한 건 우리가 기로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말로 가거나 아니면 AI가 만들어낸 동물원에 갇히게 될 것이다. 이런 상상도 해 보았다. 기술이 점차 발전하고 인간은 죽는 것을 싫어해서 하나씩 관절을 교체해나가다 나중에는 뇌파로 육체를 조정하게 하고 자신의 뇌는 집에 보관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 로봇만 교체한다면 영생을 유지하게 된다면? 그 때는 인간의 정의라는 것이 어떻게 될까. 또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나의 이런 의미없는 상상과 별개로 오늘도 우리는 문명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하는 기계로 살아가고 있으며 아마 이런 현실은 죽을 때까지 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인생이 잘 산 인생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