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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pr 16. 2022

오늘이 마지막 진료일입니다

한방병원을 폐업하다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해본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지만 6시 30분이다. 늘 이 시간이면 절로 깨어난다. 30분 정도 누워서 휴대폰을 보다가 7시가 되면 부엌에 가서 바나나를 먹고 물을 한 잔 마신 후 운동을 시작한다. 1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나서 8시 10분에 닭가슴살과 고구마로 아침식사를 한다. 8시 30분에 씻고 50분이면 집을 나선다. 병원에 도착하면 9시 15분이다. 컴퓨터를 켜고 부팅하는 사이 정수기에서 물을 떠 온다. 부팅이 완료되면 입원환자 현황을 출력해 특이사항이 있는 환자들을 체크한다. 9시 30분이면 회진이 시작된다.


나는 2020년 12월 1일에 기존에 재직 중이던 한방병원을 인수했다. 그 후 17개월간 영업을 했으나 수익성 악화와 경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폐업을 결정했다. 2022년 4월 14일은 마지막으로 진료를 보는 날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처음 개인사업자로서의 발을 떼던 2년 전만 해도 17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될 줄은 몰랐다. 


마지막 회진을 시작한다. 회진을 보조하는 간호(조무)사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초창기부터 함께 일한 사람들이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하다 보니 내 눈빛과 손짓만으로도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척척 건네주는 경지에 이르렀다. 일도 잘하고 말썽도 일으키지 않아서 경영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사람들이었다고 해야 할까. 

환자분들이 마지막이라고 인사를 건네신다. 우리 병원을 찾아주셨는데 마지막까지 잘 살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몇 차례 입원한 적이 있는 환자 한 분은 원장님께 침 맞으려고 일부러 항상 여기만 왔는데 아쉽다고, 근처에서 다시 개원하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며 신신당부하셨다. 다른 한 분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하시는데 그 말에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병원이 잘 되었더라면 폐업이란 길을 택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을. 씁쓸하고 가슴 아프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 2년이 넘었고, 그새 자영업자들은 단 한순간도 편치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 병원 주변에서만 생각해 보아도 일식집 하나가 망했고, 짬뽕 집도 하나 사라졌고, 병원 일층에 있던 카페도 문을 닫았다. 다들 하는 데까지 해 보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내 병원을 가지게 되고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경영이라곤 전혀 아는 게 없는 애송이가 무슨 자신감으로 몇 억이나 되는 대출을 받아 병원을 인수했나 싶다. 직원이 30여 명에 달하는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건 장난이 아니었다. 고정지출만 1억이 넘어가니 매달 그만한 매출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였고, 만약 적자가 나면 내 생활비를 못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직원의 월급을 줄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그게 가장 큰 공포였다. 나를 믿고 일해주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절박한 생활비일지도 모를 그 돈을 제 때 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직원들의 헌신 덕에 다행히 월급을 주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적은 없어서 단 하루도 한 푼도 밀리지 않고 지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런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 정신적으로는 정말 큰 악재였던 것 같다. 병원을 정리한 지금 가장 홀가분한 게 바로 그 점이다. 다른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운 마음. 나는 정말 그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큰 사업체를 운영할 만한 깜냥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도전해 본 뒤에 절절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세상에 쉬운 사업이라는 건 없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도 고되지만, 투자도 어렵고, 사업 역시 녹록지 않다. 단순하게 식당을 하나 한다고 해도 고정적으로 최소 2인의 인건비가 500이고, 1층일 경우 월세는 500에 육박한다. 최소한 한 달에 천만 원이 나간다는 뜻이다. 매출이 천만 원이 나오려면 매일 30만 원은 벌어야 하고, 만 원짜리 밥상이라면 30인분은 팔아야 한다. 그런데 30인분 파는 게 말처럼 쉬울까? 숱하게 많은 식당이 생겼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것은 사전에 시장조사가 철저하지 못했던 사장이 많은 탓도 있을 것이다.


나의 첫 개원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채로 끝났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시작부터 잘못 끼운 단추가 있었다. 나는 경영을 몰랐고, 병원의 모토도 없었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이 없는 채 현상 유지만 하길 바라는, 그렇게 하면 최소한 생활비는 벌어갈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그래서 성장하지 못했고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마무리를 짓게 되었다. 월급이 밀리거나 부도가 나는 등의 민폐를 끼치지 않고 닫았으니 천만다행이다.


다음을 위한 기록.

1. 창업할 산업의 총체적 전망부터 분석할 것. 장래가 어두운 사업이라면 무리한 대출을 일으켜 뛰어들지 말 것.

2. 너무 자금이 빠듯한 창업은 절대 하지 말 것.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음. 

3. 상황이 안 좋아질 때의 시나리오를 반드시 체크할 것. 마지노선으로 손절선도 정해둘 것. 예를 들어 6개월간의 고정비를 가지고 뛰어들었는데 7개월간 적자가 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폐업을 한다 치면 건물의 원상복구 의무로 인해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 부분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돈을 손해 볼 위험을 떠안고 시작할 정도로 성공에 대한 보수가 큰가?

4. 고정비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시작할 것. 인력을 몇 명이나 쓸 것인지, 어떤 시간표로 운용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계획 필요.

5. 비전과 모토가 없는 사업은 하지 말 것.

6. 같은 업종 내 경쟁자와 무엇이 차별화되는지 무기를 잘 생각해 볼 것.


4월 14일 오후 4시, 나의 하나한방병원은 마지막 진료를 마쳤다. 가운과 슬리퍼를 챙겨 문을 나섰다. 이제 나는 병원장이 아니다. 다시 자유인이 되었다. 당분간은 이 자유를 좀 즐겨야겠다. 그런데 아직도 6시 30분이면 절로 눈을 뜨고 있다. 부지런함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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