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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11. 2022

알배기의 계절이 돌아왔다

마트에 가니 노오란 알배기가 작은 것은 2,500원, 큰 것은 3,500원에 진열되어 있다. 반가운 노란색이 아닐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리 집에선 알배기를 삶아먹었다. 알배기를 푹 삶아 부드럽게 만든 뒤 냉장고에서 차게 식히고, 멸치액젓에 몇 가지를 넣어 만든 외할머니 특제 양념을 조금 떠 넣어 쌀밥과 함께 싸 먹으면 배추 단맛과 멸치액젓 특유의 향이 어우러져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곤 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할머니께서도 송이는 시래기(경남에서 알배기 삶은 것을 부르는 말)만 있으면 된다고 하실 정도였다.

그러다 고향을 떠나 대학에 간 이후로는 좀처럼 시래기를 구경하지 못했다. 이토록 서민적인 음식을 파는 식당도 없거니와 할머니의 양념장 역시 오직 할머니 댁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영혼이 허기지고 집에 가면 좋아진다 싶더니 그건 아마 집에 갈 때마다 손주 온다고 미리 시래기를 삶아두신 할머니 덕분이지 않았을까.

지금도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이제는 스스로 알배기를 사다 먹는다. 냄비에 물을 팔팔 끓이고, 밑동을 자르고 한 번 헹군 알배기를 넣은 후 배추 삶는 냄새가 집안에 그윽이 배는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 냄새, 그 색, 그 맛, 무엇 하나 내 본성을 거스르는 것 없이 맞춤하다. 궁금하다. 나는 원래 알배기를 좋아하는 유전자를 갖고 난 것일까, 아니면 외할머니 덕에 이렇게 좋아하게 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내가 누구보다도 유별나게 이 음식을 좋아하고 그리워함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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