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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배앓이, 마음이 만든 신호

by 유송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여덟 살 여자아이와 엄마였습니다. 아이는 가방을 멘 채로 들어왔는데, 엄마 손을 꼭 잡고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원장님, 얘가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해요. 이상해서 내과도 가보고 소아과도 가봤는데, 검사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네요. 그래도 계속 아프다고 하니 걱정이 돼서 왔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언제 가장 배가 아프다고 하나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하셨습니다.
“음… 가만히 보니 학교 갈 시간에 주로 그래요.”


아이의 배를 살펴보았습니다. 살살 눌러보아도, 깊게 눌러보아도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는 간지럽다는 듯 피식 웃기만 했습니다. 식사 습관을 물어보니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보통 위장에 실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밥을 잘 먹지 못하거나, 밥을 먹자마자 배가 아프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달랐습니다. 저는 곧바로 엄마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가 겪는 배앓이는 위장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어린아이의 위장은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큰 탈이 날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배가 아프다고 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아직 세상을 잘 모르고 자기 기분과 감정에 크게 휘둘리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아이에게는 ‘가기 싫다’, ‘하기 싫다’라는 감정이 그대로 몸의 신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히 학교나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 되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것은 아주 흔한 패턴입니다. 실제로 긴장이나 스트레스는 위장을 통해 나타나기 쉽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설명드렸습니다.
“아이의 위장에 이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위장에 관계된 약이 아니라 정서적 울체를 풀어주는 약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짜증 덜 내는 약’이라고 생각하셔도 돼요.”

그리하여 아이에게는 특별히 무겁지 않고 맛도 순한 대추와 감초 위주의 간단한 한약을 지어드렸습니다. 이는 소화를 억지로 돕는 약이 아니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작은 ‘스트레스 해소제’ 같은 의미였습니다.

침치료도 병행했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침을 깊게 놓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배 주위의 긴장을 풀어주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가볍고 부드러운 자극으로 충분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모님의 태도였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당부드렸습니다.

“아이의 배앓이를 단순히 꾀병으로 보지 마시고, ‘아, 지금 마음이 힘든가 보다’ 하고 이해해주시면 됩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편안하게 안아주는 것이 약보다 더 큰 치료입니다.”


어린이의 배앓이는 단순한 위장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 그 신호가 배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아무리 소화제를 타 먹여도 호전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서적 울체를 풀어주는 치료가 더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대추와 감초 같은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약재로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이 함께한다면 배앓이는 의외로 금세 사라지기도 합니다.

보름이 지난 뒤, 제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밝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편안해하는 것 같아요. 아침마다 배 아프다던 아이가 요즘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그 한마디에 저는 안도와 함께 따뜻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배앓이는 단순한 장기가 아닌, 마음이 보내는 작은 신호였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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