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환자는 50대 초반의 여성분이었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깔끔하게 단장한 평범한 분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얼굴빛은 늘 긴장되어 있었고, 앉아 있는 동안에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음이 불안정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첫마디는 이랬습니다.
“원장님, 제가 도대체 왜 이렇게 예민해진 건지 모르겠어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가슴이 자꾸 두근거리고, 땀도 잘 나고…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듭니다.”
진료를 이어가며 들어보니, 그분은 교감신경 항진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도 깊이 잠들지 못해 새벽에 여러 번 깨고, 아침이면 개운하지 않음
가슴 두근거림, 이유 없는 불안
뒷목과 어깨의 극심한 긴장감
손발에 땀이 많고 체온이 들쑥날쑥함
소화가 잘 안 되고 늘 속이 답답함
특히 50대 전후의 여성분들에게 이런 증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갱년기에는 여성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자율신경계가 큰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교감신경이 쉽게 항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일이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환자분께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이건 단기간에 좋아지는 병이 아닙니다.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몸이 다시 안정됩니다. 적어도 3개월은 생각하시고, 일주일에 3번은 내원하셔야 합니다.”
환자분은 망설였지만, 결국 믿어보기로 하셨습니다. 그렇게 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치료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침 치료: 긴장된 교감신경을 가라앉히기 위해 귀 주변, 뒷목, 심흉부와 관련된 혈자리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침을 맞는 동안 환자분은 서서히 몸이 이완되며 눈꺼풀이 내려앉곤 했습니다.
한약 치료: 기운은 보하면서도 흥분된 신경계를 가라앉히는 방향으로 처방했습니다. 무겁지 않고 매일 복용하기에 부담 없는 약을 지어 꾸준히 드시게 했습니다.
첫 달은 사실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잠은 잘 못 이루었고, 두근거림도 간헐적으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환자분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내원하셨습니다.
둘째 달로 접어들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원장님, 어제는 밤에 한 번도 안 깨고 잤어요.”
그 말씀을 하실 때 환자분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안도와 희망이 함께 묻어나 있었습니다.
셋째 달이 되었을 때는 이미 표정 자체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초진 때의 불안한 눈빛은 사라지고, 목소리도 밝아졌습니다. 뒷목과 어깨의 긴장감이 풀리니 두통도 사라졌고, 손발의 땀도 현저히 줄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전 같으면 아침에 눈 뜨는 게 제일 괴로웠는데, 요즘은 하루를 시작할 힘이 생겼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3개월 치료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자율신경 균형을 측정하는 검사를 다시 진행했습니다. 초진 때는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항진되어 ‘매우 나쁨’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는 모든 지표가 ‘매우 좋음’으로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환자분은 결과지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좋아질 줄 몰랐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이 환자분은 꽤 빨리 회복된 경우에 속합니다. 자율신경이 무너진 분들 중에는 6개월, 때로는 1년 이상을 꾸준히 치료해야만 겨우 균형을 회복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만큼 자율신경계의 불균형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이틀의 약이나 주사로 간단히 해결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율신경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도, 하루아침에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갱년기 전후 여성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교감신경 항진증은 반드시 시간을 두고 관리해야 합니다.
이 환자분은 3개월 동안 주 3회 내원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결과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율신경 치료에 필요한 ‘꾸준한 시간’을 믿고 따라와 주셨다는 점입니다.
치료를 마치던 날, 환자분은 제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장님, 제 주변에도 저처럼 밤에 잠 못 자고 두근거림 때문에 고생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꼭 여기 와서 치료받아보라고 이야기할게요.”
저는 그 말에 웃으며 답했습니다.
“그분들에게도 전해주세요. 자율신경은 기다려준 만큼 반드시 회복할 수 있다고요.”
꼬박 3개월이 걸렸지만, 그 시간은 환자분에게도 저에게도 값진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례는, 자율신경 치료가 결코 단기간의 일이 아님을 다시금 일깨워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