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독후감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자유롭기를 원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러나 진정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인간은 드물며, 모든 것에서의 자유를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인간은 더더욱 드물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일정한 정도의 자유를 얻는 것에 만족하며, 그 외 부분에서는 오히려 소속과 속박을 원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인간이 함부로 가질 수 없는 완전한 자유와 야성에 대한 꿈이다.
조르바는 참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다분히 충동적이고 그 충동을 그대로 밖으로 드러내며,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가 좋아하는 악기 '산투르'를 아무 때나 연주할 수 없는 것처럼.
반면, '두목'으로 표방되는 주인공은 조르바와 정반대의 스타일을 가진 인간이다. 불경을 공부하며, 깨달음을 통해 욕구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한 사람은 욕구대로 살아가는 남자, 한 사람은 욕구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 싶은 남자. 이 정반대의 구도가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왜? 그것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르바와 두목이 화합하는 장면을 감상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2AzpHvLWFUM
요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두목'스러우면서 '조르바'스럽다. 색욕을 필두로 한 많은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고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내 속에서는 갖가지 욕망이 들끓어 올라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이러한 양면의 충돌로 인해 종종 내가 억제하지 못하는 순간에 절로 튀어 오른 충동이 나의 행동을 이끌어 가곤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조르바의 말에 특별히 감동을 많이 받았다. 대부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사람들이 그의 대충 던진 듯한 말에 정곡을 찔리며 깨달음을(혹은 감동을) 얻는다고 하지만 어쩐지 내게는 더 특별하게 다가온 느낌이다. 이쯤에서 조르바가 삶에 대해 던진 '진리' 한 마디를 들어보자.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오, 남자들은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이런 말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 허구한 날 성적 충동에 이끌려 속된 말로 'X대가리 잘못 놀리고' '허리띠 간수 못해' 구박받고 집에서 쫓겨나고 감옥에까지 드나들어야 했던 어리석은 남자들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다. 이 독후감을 읽은 사람이 함부로 조르바를 '욕정에 충실한 들개'로 치부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조르바는 그냥 들개가 아니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그는 '인간에 내재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실은 자유를 얻고 싶지 않은 더 깊은 속내의 양면'을 표현하기 위한 최상의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조르바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조르바와 두목의 여정에서 당신이 무엇을 느끼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