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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pr 16. 2016

먼 옛날 흑인 노예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알렉스 헤일리, <뿌리> 독후감

흑인과 백인 간의 갈등에 대해서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이 어디서 비롯했으며 실질적으로 백인 통치 하에서 흑인 노예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잘 아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많은 백인들이 세계 2차 대전은 알아도 일본의 조선강점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뿌리>를 읽고 나면 당신은 흑백갈등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그 세세한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알게 될 것이다.


<뿌리>는 제목 그대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 혹은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들이 어디서 기원했으며, 그 흑인들은 어째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보다는 르포르타주에 가까우며, 책의 말미에서도 작가인 알렉스 헤일리가 소설가novelist보다는 작가author로 분류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엄청나게 두껍지는 않다. 양장본으로 상, 하 권 단 두 권인 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게 요약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무려 7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 내용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능력껏 조금만 이야기 해 보겠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프리카의 한 마을이다. 주푸레라고 불리는 이 마을에서 태어난 쿤타 킨테는 마을의 풍속에 따라 아프리카 흑인이자 무슬림으로서 건강하게 자라난다. 주푸레 마을의 삶에 대해 서술하는 이 부분만 해도 <뿌리>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사람들은 나이를 세는 대신 '장마철'을 헤아리고, 월을 세는 대신 '달'을 헤아린다. 그리고 쿤타 킨테는 나이를 먹으며 한 명의 주푸레 마을 성인으로 성장해 간다.

문제는 백인의 아프리카 상륙과 함께 시작된다. 백인들은 노예로 쓰기 위해 흑인들을 마구 납치하고, 흑인들은 흑인을 사냥하는 백인들을 '투봅'이라고 부른다. 쿤타 킨테는 어른들에게 투봅의 이야기를 듣고 주의하지만 어느 날 그 역시 강제적으로 납치되고 만다.

흑인노예를 미국으로 운송하는 과정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사진이다. 제목은 '흑인이 강인한 이유', '흑인노예 수송방법' 등 다양했는데 이것이 과연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를 두고 사람들 사이에 가벼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뿌리>에 기반해 말하자면 이 사진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못 믿겠다면 아래의 대목을 읽어보자.

발가벗은 채로, 쇠사슬에 묶이고, 발이 채워져서, 그는 찌는 듯한 더위와 구역질 나는 악취, 그리고 비명을 지르고, 흐느껴 울고, 기도를 드리고, 구토를 하는 악몽 같은 광란으로 가득 찼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다른 두 남자 사이에서 누운 채로 정신이 들었다. 그는 가슴과 배에서 자신의 토사물 냄새를 맡고는 손으로 만져 보았다. - <뿌리> 상권 178p

이것은 쿤타 킨테가 투봅에 의해 두들겨 맞고 기절했다가 깨어난 직후의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는 사진과 같은 상황에서 무려 4개월 동안을 배에 실려 이동했으며 중간에 장티푸스의 유행과 영양실조, 신체적 학대 등으로 수많은 아프리카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이 납치과정만 해도 충분히 끔찍하지만 놀랍게도 당시 납치 당한 흑인들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미국에 도착한 흑인들은 곧장 상인들에 의해 판매되며, 팔려간 곳에서는 노예로 일하게 된다. 노예는 주인의 허락없이는 결혼도 할 수 없고 도주하다가 잡힐 경우 사형을 비롯한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아야 했다. 물론 아프리카의 건강한 육체와 주푸레 마을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던 쿤타 킨테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여러 번 시도 끝에 한쪽 발의 절반이 잘려나가는 처벌을 받게 되고 이후 하는 수없이 노예로서의 생활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후의 이야기는 앞서 말했듯 쿤타 킨테의 자식들을 통해 이어진다. 쿤타가 낳은 키지, 키지가 낳은 조지, 조지가 낳은 톰으로 노예 생활은 대대로 이어진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주인이 마음만 먹으면 혀를 다 잘라버릴 수도 있고 매일 강간할 수 있는 노예 생활이 자식을 낳는 순간 대물림 되는 것이다.(그래서 작중에는 자식을 낳자마자 노예로 만들 수 없다며 머리를 찧어 죽여버리는 여자도 나온다.)


<뿌리>는 쿤타 킨테와 그 자식들의 이야기지만 한편으로 노예로 납치 당한 모든 흑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지금도 미국에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인지도가 높은 책은 아닌데, 그것은 우리가 미국의 식민지배나 노예문제 등에 대해 교과서 등에서 별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문제들은 인간이 과거 어떤 잘못을 저질러 왔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교훈을 주고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에 국가의 경계를 떠나서 모든 인류가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성공 뒤에 숨겨진 그림자(흑인노예 문제 말고 인디오의 문제도 있다)가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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