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 <머저리 클럽> 독후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함께 진학한 여러 친구들과 어울려 다닌다. 때로는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둥켜 안고 울기도 하며. 수업이 끝나면 근처 빵집으로 몰려간다. 때로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돈을 안 낸 체 도망치기도 한다. 그리고 여학생들이 만든 클럽과 교류한다. 한 달에 한 번, 주제는 독서. 그 안에서 각자 마음에 드는 여학생과 감정을 주고 받는다.
<머저리 클럽>의 내용이다. 정말 별 것 아닌 내용.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추억에 빠져든다. 그리고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그 때의 순수한 감정을 떠올린다. 배우 안성기는 이렇게 말했다.
최인호 선생의 <머저리 클럽>을 읽는 내내 집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고교 시절의 일기장을 꺼내 보는 기분이었다. 내 인생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이 거기에 있었다.
머저리 클럽은 주인공은 동순을 비롯한 여섯 친구들이 모여 만든 클럽이다. 이렇다 할 목적이 있는 클럽은 아니다. 그저 원래 친하던 친구들끼리 모임에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아참, 정확히 말해 동순은 주인공이 아니다. 주인공 겸 서술자라고 칭하는 편이 맞겠다. 동순의 이야기만 主가 되는 게 아니라 영구, 영민이 등의 이야기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배우 안성기의 말마따나 이 책은 고교 시절의 일기장과 같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느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일기장 같다고 느끼려면 적어도 방과 후 빵집에 우르르 몰려가 남학생(혹은 여학생)을 훔쳐보던 그 시절의 고등학생이었어야 한다. 나는 그 때보다 한참 뒤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그런 시대적 공감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기적 공감은 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에게도 역시 순수한 고등학생으로서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순수한 사랑을 해 본 것이 언제인가? 머저리 클럽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순수하다. 동순은 첫 눈에 반한 소림을 따라 집까지 쫓아간다. 그리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연락하고,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문수는 혜련이에게 양배추 인형을 선물하지만 여자 앞에만 서면 떨려서 용기있게 고백하지 못한다. 동혁이는 말숙이에게 그림 물감을 선물하고 역시 고백한다.
책을 덮고서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았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마구 따라다닌 게 언제인지? 아무런 계산없이 누군가를 그리며 밤새워 편지를 써 본 적은 있는지? 설렘에 입도 열지 못하고 떨었던 적은 없는지. 알게 된 것은 나의 순수의 시절이 많이도 지났다는 것이었다. 씁쓸하게도 말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어린 시절 안에는 젊고 건강한 부모님이 있을 수도 있고,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도 있을 테지만 아마도 가장 그리운 것은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비록 다시 그만큼 순수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잠시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