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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May 15. 2020

잘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


반년 간 취미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성인을 위한 취미 미술학원으로, 체계적인 커리큘럼보다는 수강생들의 자유도와 흥미를 높이는데 최적화된 곳이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연습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은 지루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생략하였다. 연습 기간이 길어지면 취미로 그림을 배우러 온 사람들은 금세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선생님도 수강생이 그림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데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잘하지 못해도 다그치는 법이 없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 훌륭하다.” 격려해주셨다. 첫날 등원하여 얼핏 파프리카처럼 보이는 사람의 코를 그렸을 때도, "인체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계시네요!"라며 칭찬해 주셨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겐 이런 교수법이 잘 맞았다. 회사 밖에서도 과제에 쫓기고 시달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게다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운다면 한동안은 기본 도형 소묘만 하고 있을게 뻔하니 말이다. 


미술학원에 도착하면 이젤과 도화지를 세팅해놓고, 새로운 그림을 찾아 그리거나 지난주에 그리던 그림을 마저 그린다. 주말에 밖으로 나와 미술학원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여 뿌듯한 마음이 차오른다. 학원에는 다른 수강생이 그린 그림이 줄지어 전시되어 있다. 오렌지빛 조명이 아늑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선생님이 다른 수강생을 지도하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려온다. 다른 수강생도 혼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아니다. 가져간 커피를 쭙쭙 빨아 마시며 성의 있게, 가끔은 대충 연필을 놀린다. 


그 치열하지 않음이, 여유 있고 넉넉한 시간이 즐거웠다. 고요하되 적막하지 않고, 집중은 하되 치열하지 않았다. 그리는 과정도 즐겁긴 하지만, 그림을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도 좋았다. 그림을 완성하면, 다 그린 그림을 요모조모 예뻐 보이는 각도에서 찍어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었다. 그럼 여기저기서, “그림 참 잘 그렸다! 취미로는 아깝다!”하는 연락이 왔다. 물론 그러라고 올려둔 것이다. 이 정도 허세는 귀엽게 봐주시라.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산 애호가의 마음, 키우는 애완동물을 프사로 해두는 집사의 마음과 비슷하다. 


어디서 뻐길 정도는 아니지만, 취미의 영역에서는 제법 괜찮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잘 그린다고 할 수 없지만, 열심히 그리면 분명 더 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은 미술을 전공한 K에게 내가 너보다 인물화를 잘 그리는 것 같노라 깐죽 이기도했다. K는 그런 나를 진심으로 얄미워했다. K가 무슨 기분인지 짐작이 간다. 그에게는 그림이 취미의 영역이 아니라, 전문 분야이자 직업이자 잘해야 하는 일이었을 테니까.





나에게도 그런 영역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어릴 적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고,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거기에 노력은 수반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이들을 보면 내장이 뒤틀리는 질투심을 느꼈다. 나름의 방어기제로 ‘나는 글 같은 거 못 써도 돼!’라고 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글쓰기는 뭐랄까, 여우의 신포도와 같은 것이었다.


글쓰기가 아니어도 잘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항상 잘 해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는 건 금세 포기해버리고, 처음부터 싫어하려 애썼다. 몸 쓰는 데 젬병이어서 체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싫어했다. 아르바이트도 같은 브랜드에서만 3년을 일했다. 숙련된 일이 아니면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하고, 필연적으로 실수하거나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격이었다. 무언가를 잘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남과 비교하니 끝도 없었다. 내가 세상에서 글을 제일 잘 쓴다거나, 그림을 가장 잘 그릴리 없었다. 잘하지 못하는 것들을 전부 포기하고 나니,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이 없었다.


좋아하던 일도 잘하려고만 하니 흥미를 잃어갔다. 16년도의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이런 글을 봤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혼자 파인트를 시켜먹었다. 카페에 와서 갈릭버터 브레드도 시켰다. 무언가를 먹는 것 외에는 나를 위로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나를 위로하는 방법마저도 먹는 것 외에는 남지 않았다. 이후에는 무언가를 좋아할 때 되려 잘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좋아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나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되려 포기해버리는 타입이니, 차라리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개인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 형편없는 글을 남이 읽는다는 생각에, 죄다 삭제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자주 일었다. 이런 고민을 친구한테 털어놓았더니 친구가 “사진도 옛날에 찍은 건 촌스러워 보이고 못생겨 보이잖아. 글도 그런 거 아닐까. 시간이 지나서 관점이 달라진 것뿐이야. 마음에 안 들면 수정하면 그만인걸.”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 마음에 안 들면 수정하면 되지, 문제 될게 뭐 있어. 글을 못 쓴다고 해서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글쓰기에 욕심이 생기다 못해, 더 이상 잘할 자신이 없어 그만두고 싶어질 때는 저때의 대화를 상기시킨다. 


그림은 취미로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질투할 일 없이, 못하면 못하는 대로 적당한 실력으로도 어깨 으쓱이며 즐길 수 있어서 말이다. 이래서 사람은 취미생활을 즐겨야 하는구나. 해야 하는 일에 지쳤을 때, 그리고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잘하고 싶은 일에 지쳤을 때 취미는 도피처가 되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삶에서 잘해야 하는 일보다는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러나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일들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앞으로도 그림을 ‘열심히’ 그릴 생각은 없다. 질리면 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질 때쯤 학원에 다닐 생각이다. 잘 그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서, 질려도 포기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림 그리기가 좋다. 가능한 내 삶은 잘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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