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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May 13. 2020

애매하게 좋아하는 마음


당신은 ‘덕후’라고 부를 만큼 좋아하는 것이 있는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해리포터 시리즈>의 '덕후'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설을 꼽으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해리포터를 꼽을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해리포터를 처음 읽으며 판타지 소설에 푹 빠졌다.


책의 부피와 무게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평소에 전자책만 읽고 구입하지만, 해리포터 시리즈만큼은 종이책으로 전권 보유하고 있다. 전체 시리즈를 최소 12번은 정독했고, 첫 번째 시리즈인 ‘마법사의 돌’은 어림잡아 23번은 읽었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해리포터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2차 창작물, 즉 해리포터 패러디 소설까지 섭렵하기도 했다. 나의 덕후로서의 스펙은 이 정도다.


스스로를 해리포터의 ‘덕후’라 자처하던 나는, 어느 날 인터넷을 하다가 나보다 더한 덕후들을 마주하고야 만다. 그들은 해리포터 용품을 모으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고, 해리포터 게임을 하면서, 영화의 작은 디테일까지 세세하게 외웠다. 심지어 영화 속 내용으로 서로에게 퀴즈를 내는데, 너무 사소해서 답을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이를테면, “해리포터는 호그와트로 가는 급행열차에서 개구리 초콜릿을 몇 개나 먹었는가?”하는 식이다. 물론 나는 그 답을 지금도 모른다.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기가 죽었다. 어딜 가서 해리포터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졌다. ‘난 해리 포터를 좋아해.’라고 말하면, 누군가 ‘그렇다면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급행열차에서 초콜릿을 몇 개나 먹었는지 아니?’ ‘아니, 모르는데.’ ‘그럼 넌 진정한 덕후가 아니군!’이라고 할 것 같았다. 과장된 생각이긴 하지만, 위축된 마음만큼은 진짜였다.


해리포터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소설이고, 전 세계의 덕후들과 견주어 보니 내가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마음은 상대적으로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들을 보며 ‘난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구나.’라고 결론 내렸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자괴감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무얼 좋아하는 것조차 잘하지 못하는구나. 그럼 대체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이게 나라고 내세울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한번 부정적으로 튄 생각이 한도 끝도 없이 뻗어나갔다.






하루는 토익학원을 가는 버스에서 팟캐스트를 듣고 있었다. 청취자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컨셉이었다. 채널 이름은 도저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들은 내용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한 청취자가 “나는 OO을 하는 걸 좋아하는데, 정말 이 일을 하는 걸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OO을 하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고민을 들은 캐스터는 “동기가 무엇이든 내가 OO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왜 굳이 그걸 구분하려 하는가?”라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느 순간 '진짜'로 좋아하는 것에 다분히 집착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서 하는 일은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고, 남들보다 덜 좋아하면 그것도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좀 맹숭맹숭하게 좋아하면 어떤가, 그게 '좋아하는 척'이 아니라면 '가짜'로 좋아하는 거라고 말할 순 없다.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좋다'라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세상에서 해리포터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취미와 호오에 있어서까지 그리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음식을 고를 때도 '나는 김치찌개가 제일 좋아.' 했다가, 다음 날에는 '나는 된장찌개가 제일 좋아.'라고 말을 바꾼다고 해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나무라는 사람이 있더라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세상에서 김치찌개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고 해서 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또한 상을 준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에는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다. 좋아하고 말고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 정해야 한다. 한때는 내 감정을 타인에게 납득시키고 싶었고,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정당할까 봐 해리포터를 좋아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을 수치화시켜서 100점 만점에 80점은 넘어야 타인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뭔가를 좋아하는 마음마저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을까. 아니, 좋아하는 마음이 객관화가 되기는 하는 것인가. 


사람들은 '좋아함'이라는 감정을 표현하고, 호불호를 가르는 각자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건 나만의 기준이다. 남들의 기준에 맞출 필요도, 그들의 이해를 구할 필요도 없다.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한없이 가벼워지기로 했다. 나는 해리포터를 좋아하고,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아마 내일은 된장찌개가 더 좋아질지도 모른다.


* 이 글에서의 '좋아함'은 편안하고 즐거운 감정, 그리고 타인에게 갖는 호감을 아우르는 말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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