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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May 01. 2020

휴강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우리들만의 피크닉


대학교 막학기는 무료하고 고요했다. 휴학을 하고 돌아오니, 무리 지어 다니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였다. 다행히 친한 친구 한 명이 복학을 해서 그 친구와 같이 교양수업을 들었다. 


우리는 비슷한 구석이 있었는데,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동시에 싫어하고, ‘시크하고 자발적인 아싸’ 컨셉에 단단히 빠져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구는 없지만 당당하고, 시크하고 멋진 4학년 언니를 표방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 친구와는 매주 수요일마다 같이 수업을 들었다. 혼자 학교를 나가는 날보다는 함께 교양 수업을 듣고, 점심을 먹는 날이 좀 더 즐거웠다. 친구를 만나는 수요일을 매주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역시 ‘시크하고 자발적인 아싸’는 어디까지나 컨셉에 불구했다.


하루는 언제나처럼 친구와 교양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강의실이 텅 비어있었다. 칠판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몇 분 앉아서 기다려봤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렇다. 그 강의는 교수님의 사정으로 휴강을 했던 것이다. 우리 둘은 강의에서 아는 사람이 없는 아웃사이더(이하 아싸)였고, 심지어는 강의시간에 불성실한 아싸였기 때문에 휴강 사실을 몰랐다.


강의가 없어서 좋다고 시시덕거리며 그다음 강의를 들으러 이동했는데 들어선 강의실 칠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휴. 강. 연강이 있는 날이었는데, 하필 두 강의 다 휴강이라니.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준비한 시간이 아까웠다. 


엉덩이 무거운 집순이 두 명은, 기왕 외출을 한 김에 무얼 해야 좋을까 열심히 고민했다. 친구가 먼저 제안했다. “피크닉 갈까?” 좋은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피크닉을 떠나기로 했다. 한강... 이 아닌 학교 캠퍼스로!


학교 앞 식당에 가서 리코타 샐러드, 오믈렛,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맥주를 사서 공원으로 향했다. 과실에서 돗자리도 하나 챙겨서 그늘 아래에 야무지게 깔았다. 도시락도 있고, 돗자리도 깔아놓으니 소풍을 온 기분이었다.


푸릇푸릇한 잔디가 지천이었고, 따뜻하되 습하지 않은 공기가 기분 좋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마침 날이 끝내주게 좋았고, 수업을 들을 필요도 없었고, 맛있는 음식과 술이 있었다. 거기다가 지금의 행복을 고스란히 공유하는 사람이 내 앞에 앉아있었다. 우리는 잔뜩 신이 났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우리를 보고 ‘좋아 보인다~’라고 말해주었다.


맥주 캔을 따고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짠!”을 외치며 캔을 부딪혔다. 친구와 나는 ‘낮맥’이 행복의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기에 여지없이 행복해졌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기분은 들떴다. 신나는 노래를 입속에서 흥얼거려보기도 하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리듬을 타기도 했다. 밥을 먹다가 포크가 부러졌는데도 뭐가 우스운지 웃음이 계속 났다. 일상 속에 비일상이 비집고 들어온 것만 같았다.


친구와 나는 짧은 피크닉을 마치고 헤어지며, 오늘 같은 행복한 일상을 이어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아니었고, 색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행복했다. 평범한 일상 속에 불쑥 끼어든 행복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날의 기억 덕분에 평범한 일상에도,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 있다는 걸, 행복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험이 끝난 날, 한낮부터 시원한 맥주 마시기. 일과를 끝내고 집에서 미드 보기. 외출 준비하면서 EDM 듣기. 점심시간을 틈타 산책하기 등등.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많고, 우리는 언제고 행복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 특히나 낮맥은 행복을 선택하는 단축키와 같다.


모든 일상이 특별할 수는 없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도 사랑하고, 예쁜 구석을 찾아내야 행복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행복은 평범한 일상 틈바구니에 선물처럼 숨어있다. 그날의 맥주 한 캔과 좋은 날씨는 내 일상 속의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시원한 맥주, 맛있는 음식, 화창한 날씨, 함께하는 좋은 사람. 그거면 세상에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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