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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May 26. 2020

소설 읽는 시간

무용하지만 좋은 것에 대하여


소설책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좋아하는 취미를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소설 읽기'라 답할 것이다. <꽃보다 남자>의 명대사,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를 이렇게 바꿔보자, "이북리더기와 전자책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판타지나 아포칼립스 세계관이 단골 종착역이다. 그렇다. 나는 현실에서 겪기 어려운 새로운 이야기, 기왕이면 새로운 세계관의 이야기를 읽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여기서 나오는 '소설'이란 주로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판타지, 로맨스 등의 장르소설을 뜻한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나를 책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열성이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도서관에 가서 배낭 가득 책을 빌려오시곤 했다. 그리고 나는 빌려온 책을 쌓아두고 한 권씩 읽는 걸 좋아하는 책벌레였다. 그때 읽은 소설이라 하면 <해리포터>, <찰리의 초콜릿 공장>, <마당을 나온 암탉>,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15소년 표류기> 등이 떠오른다.

판타지, 모험 소설을 읽으며 공상에 빠져있는 걸 좋아했다. 예를 들어, <삐삐 롱스타킹>을 읽은 후 책상 밑에 이불과 쿠션 따위를 가져다 놓은 은신처를 만들었다. 상상 속에서 그곳은 책상 밑이 아니라 커다란 느티나무 꼭대기에 지어진 오두막이었다. <15소년 표류기>를 읽고 무인도에 표류하는 상상을 했고, <찰리의 초콜릿 공장>처럼 윌리웡카가 나를 신기한 세계로 데려가길 소망했다.

소설은 넓은 세계 그 자체였다. 집-학교-학원 밖에 있는 미지의 세계이자, 겪어본 적이 없기에 동경할 수밖에 없는 세계였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통틀어 소설을 읽는 게 가장 재미있었다.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소설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기억하는 방학의 모습은 대개 비슷하다. 비 오는 날에는 빗방울이 새시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화창한 날에는 쿠션 위에서 햇볕을 받으며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용과 맞서 싸우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했다. 안전하고 안락한 곳에서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었다.

직접 도서관에 가는 것도 좋아했다. 화창한 날에는 배낭을 메고 도서관에 갔다. 열람실에서 발걸음 소리를 죽여가며 책을 골랐다. 오래된 책 특유의 먼지 냄새도, 빳빳한 종이 냄새도 좋았다. 다 읽든 읽지 않든 배낭 한가득 책을 빌리고, 돌아올 땐 200원짜리 레몬티를 뽑아서 마시는 게 나만의 의식이었다.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가고, 책을 고르고, 책을 읽는 그 시간 자체가 좋았다.

핸드폰이 생긴 후에는 모바일 연재 사이트에서 무료 소설을 읽다가 잠들곤 했다. 인터넷 소설이 히트를 쳤을 땐 전자사전이나 mp3에 소설을 넣어 읽었다. 중학생 때는 '인터넷 소설'이라 불리는 학원 로맨스 소설이 인기였다. 밤에 누워서 잠이 올 때까지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울고 웃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90년대생이라면 <온새미로>, <나쁜 남자가 끌리는 이유> 신드롬을 기억할 것이다. 밤에 책을 읽는 버릇은 아직까지도 남아있어서 이북리더기로 책을 읽다가 까무룩 잠들곤 한다.

고등학생이 된 후론 전쟁과 싸움이 난무하는 판타지 소설을 주로 읽었다. 내가 중,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판타지 소설을 읽는다는 건 '오타쿠'(그 당시 마이너한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때 오타쿠라고 표현했다.)라는 놀림을 당하기 십상이었기에 학교에서는 고전문학만 읽으며 새침을 떨었다. 하교를 하면 동네 대여점으로 달려가 김정률 작가의 연작 소설을 빌려보곤 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선호하는 소설 장르는 판타지다.

내가 소설, 특히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상상력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직접 상상하는 건 어려우니, 타인의 상상력을 빌려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는 것이다. 한 번은 판타지 소설 작가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진부한 용사 이야기를 쓰다가 도무지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 포기했다. 반면, 충분한 상상력만 뒷받침해 준다면 소설에 한계는 없다. 영상과 달리,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구현해낼 수 있다.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가 판타지 소설을 읽는 이유가 "우리 시대가 아직 완전히 이해를 도모하지 못한 영혼의 질병"이라고 이야기한다. 확실한 건, 지금-여기에는 없고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탐닉하는 게 즐겁다는 사실이다.


우울한 날에도, 기쁜 날에도 여전히 소설을 읽는다. 하도 곁에 두고 읽어대서 이젠 소설을 읽는 게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당장 읽지 않더라도 다음에 읽을 소설을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초조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전자책 서재에는 최대한 읽을거리를 가득 쌓아두고, 책을 읽지 않을 때는 훗날 읽을 재밌는 책을 찾는데 시간을 쓴다.

소설을 읽는 시간은 주로 밤이다. 모든 일을 끝낸 후 잠이 들기까지 책을 읽는다. 해외여행을 가도 자기 전에 소설을 읽는 루틴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내게 소설은 재미있는 놀이다. 쉬는 날에는 침대에 붙어서 하루 종일 소설을 읽는다. 이 세상에 소설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책을 좋아할 수 없었을 거다. 책을 읽을 때마다 꼭 새로운 걸 배우고, 실용적인 지식을 얻고, 대단한 교훈을 얻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읽는 과정이 즐거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읽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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