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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Sep 02. 2020

비빌 엉덩이




내가 초등학생일 땐, '빽'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사전을 찾아보면 '빽'의 뜻은 '뒤에서 받쳐 주는 세력이나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주로, 뒤를 봐주는 고학년을 이르는 말이었다. 빽이 있는 아이들은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아이'로 고학년의 위세를 입어 나름의 지위 혹은, 계급 같은 걸 얻었다. 재밌는 건, '빽'은 1~3살 정도의 차이가 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내 빽은 우리 엄마야!"라고 해봤자 그렇게 나이 많은 어른은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내 빽은 초등학교 4학년이야!"라고 해야 위력이 있었다.


물론 겁나게 범생이었던 나는 '빽' 같은 게 없었다. 되려, 신나게 시내에 놀러 나갔다가(사는 곳이 시골이어서, '시내'라고 부르는 중심가가 따로 있었다.) 중학교 선배들한테 으슥한 곳으로 끌려가 3,000원을 뜯긴 적은 있다. 당시, '빽'도 없고, 뭣도 없던 나는 가진 돈을 그대로 내주고 말았다. 여러 명이 나를 둘러싸고 가진 돈 좀 있냐고 윽박지르는 게 무서워서, 돈을 뺏기고 나서는 서럽고 억울해서 질질 울었던 기억이 난다. 흑역사긴 하지만, 나보다는 그들에게 부끄러운 과거이길 바란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던 나는, 돈을 뜯기고 나서 세상의 이치를 깨우쳤다. 뒤를 봐주는 '빽'이 없다는 건 서럽고 억울한 일이라는 걸. 세상엔 그보다 더한 비극이 많다는 걸 몰랐던 나는, 작은 불의에 크게 분노했다. 이후에도 작고 잦게 부당함을 느꼈다. 대학에 입학한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매일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나 누구는 그러지 않아도 용돈을 두둑이 받았다. 하루는 공평하게 24시간이라지만, 나는 학교에 갔다가 알바를 해야 하고, 누구는 그럴 필요 없이 하교 후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둘이서 학점 경쟁을 하는 게 공평한 일일까. 나는 툭하면 '열폭'했고, 나의 '빽' 없음을 탓했다.


아르바이트를 호기심 삼아해 본다는 말을 들으면 과하게 화를 냈다. 아르바이트를 취미 삼아 하든, 놀이로 하든, 호기심으로 하든 순전히 그의 마음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르바이트를 호기심 삼아한다.'는 말이,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을 욕보이는 말이라고 여겼다. 과민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대부분 그렇듯, 돈에 쪼들린다는 사실은 나의 역린 같은 거였다.


남의 화목한 가정을 부러워했고, 유복한 생활을 부러워했고, 타고난 재능이나 외모를 부러워했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았지만, 마음 깊이 받아들이진 못했다. 그 사실을 완전하게 체화한 건 직장인이 된 이후다. 내 돈을 벌어 방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고, 따로 저금을 할 수 있는 지금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을 부러워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니, 부러워할지언정 나와 비교하고 자학하는 일을 멈췄다. 내가 그새 더 나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이제는 돈에 쪼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이런 이야기도 꺼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빽'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하반기의 빅 이벤트 중 하나였던 이사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돈을 아끼려고 반포장 이사를 신청했는데, 막상 짐을 싸려니 막막했다. 짐을 싸고, 트럭에 싣고, 이동하고, 또 풀어야 한다니. 짐을 그대로 두고 내빼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가 "이사 도와주러 갈까?"하고 물었지만, 왕복 10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나를 도우라 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이제 내 곁에는 애인, K가 있었다.


K는 삶의 많은 장면에서 늘 힘이 되어 주었다. 돈 없는 대학생 시절에 만나, 돈이 부족할 땐 서로 번갈아가며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기도 했고, 휴학과 졸업, 그리고 취업 등 삶의 중요한 순간에도 함께 했다. 얼마 전 이슬아 작가님의 <심신단련>이라는 책을 읽다가, 작가님이 자신의 애인에게 '우리는 서로의 비빌 언덕'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K가 떠올랐다.


'우리는 서로의 비빌 언덕'이라는 말을 가슴에 가만히 품고 있다가, K를 만난 날 그에게 말했다. "내가 얼마 전에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 우리는 서로에게 비빌 언덕인 거 같아." 이 이야기를 해주면 K도 분명 깊이 공감하며 감명받으리란 사실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영 떨떠름했다. "그래? 어..." 마지못해 대답을 내어놓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운전에 집중했다.


반응이 영 미적지근한 걸 보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것 같길래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한테 의지하고, 서로의 일에 발 벗고 나서잖아. 각자의 비빌 언덕이 가족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는 건데 우리는 서로에게 빽이 되어 주니까 비빌 언덕이라는 거지" 말하다 보니 너무 구차해서, 내가 한 말의 감동이 마이너스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건 그래... 그런데 있잖아, 우리 여기로 가는 거 맞나?" 여전히 반응이 시원찮은 데다가 갑자기 딴 소리까지 하다니. 슬슬 화가 치밀었다.


"내가 지금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왜 대꾸도 제대로 안 하고 말을 돌려?" 뾰족하게 쏘아붙였다. "알았어, 비빌 엉덩이..." K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냉랭한 분위기에서 나는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쟤 방금 뭐라고 그런 거야? 비빌 엉덩이라고 들렸는데...' 나는 그제야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너 설마 비빌 엉덩이라고 들은 거야?" "응, 여태 비빌 엉덩이라고 하는 거 아니었어?" 알고 보니, 여태 그는 '비빌 언덕'을 '비빌 엉덩이'로 들은 거였다. 엉덩이를 비빈다는 이야기를 하니 그게 무슨 시답잖은 소리인가 싶기도 하고, 망측스럽기도 해서 자꾸 다른 화제로 돌리려 했던 것이다. 서로의 오해를 그제야 알아차린 우리는 한참을 낄낄거리고 웃었다.


발음이 안 좋은 한 명과 귀가 안 좋은 한 명의 시너지 효과로, 우리는 망측스럽게 서로의 비빌 엉덩이가 되었다. 뭐, 따지고 보면 언덕이나 엉덩이나 생긴 것도 닮았고 그게 그거지. 기왕 비빈다면 언덕보다는 엉덩이가 더 따뜻해서 좋지 않을까. '빽'은 필요 없지만, '비빌 엉덩이'는 앞으로도 오래오래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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