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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형박사 Oct 02. 2018

모두들 이 나라를 떠난다는데

『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떠나야겠다는 거다. 더 이상 여기엔 희망이 없다, 살지 못하겠다는 거다. 나라가 온통 썩어 내려앉고 있지 않은가. 관료, 정치권력의 부정부패. 비리 앞에 속절없이 지켜만 볼 수밖에 없는 이 암담한 현실, 이제 국민은 분노할 줄도 잊은 채 무력감에 빠져있다. 

 물도, 공기도 작은 공사판 현장까지 다 썩었다. 강성 노조 집단 이기주의, 무질서, 범죄... 숨통이 막힌다. 이런 판에 경제인들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아이들 교육마저 희망이 없다. 세계에서 제일 비싼 교육비를 내면서. 아이들을 위해서도 떠나야겠다는 거다. 글로 다 적자면 끝이 없다. 

 그래서인가. 요 며칠 사이 외신 기자 세 사람이 차례로 나를 찾아왔다. 이민 행렬이 길어지고, 국내의 장사꾼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데 왜 그러느냐, 왜 한국 사회가 최근에 이렇게 나빠졌느냐는 것이다. 내 대답은 분명하다. 나빠진 게 아니다. 오히려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사정에 정통한 외신 기자가 그 말을 수긍할 리 없다. 하긴 독자들도. 아니 당장 뇌물 액수부터가 수십억 원대로 껑충 뛰었는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도 잘살게 됐기에 그만큼 커진 것이다. 못살던 시절에야 빈 창고에 도둑이 든들 훔쳐 갈 것도 없었다. 그래도 못 믿기는지 다그쳐 묻는다. 신문도 안 보느냐. 글줄이나 쓰는 논객 치고 그런 시각으로 오늘의 한국을 진단하는 사람은 없다. 그 역시 잘 돼가고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몇 해전만 해도 어디라고 감히 그런 글을 써? 당장 신문사가 문을 닫아야 할 판인데. 그만큼 잘 살게 되고 자유가 생겼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왜 논객의 논조는 하나같이 비판. 개탄뿐이야. 노객은 어느 시대에고 비판이 업이다. 그걸 잘해야 인기다. 한국이 세계 최악이라고 떠들어 보라. 당장 베스트셀러가 된다. 거기다 군사독재 시절엔 민주화라는 투쟁 목표가 있었다. 모든 탓을 독재에 투사했다. 비록 드러내 놓고 말은 잘할 수 없었지만 모든 논객의 비판의 초점은 거기에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니 독재 정권은 면죄부를 얻기 위해 모든 힘을 경제에 기울였다. 덕분에 세계가 놀랄 기적을 일궈놓았다. 서민들 입장에선 얼씨구 나다. 자유가 없다지만 그것도 말발이나 하고 글줄이나 쓰는 사람 이야기일 뿐, 민초들이야 대폿집에 앉으면 온갖 소리 다 하고 껄껄댔다. 

그 서슬 퍼렇던 시절에도.

 지금도 잘 돼가고 있다. 잠시 멈칫거리기도 하고 뒷걸음칠 때도 물론 있다. 그러면서도 느리지만 우린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 이러기까지엔 물론 논객들의 추상같은 비판. 조언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다만 내 소심증은 경쟁이나 하듯 쏟아지는 비판이 자칫 열심히 일하는 서민들 기를 꺾을까 하는 점이다. 

 그런데도 왜 갈수록 더 암울해지는 느낌이냐? 그 역시 우리 의식이 그만큼 깨었기 때문이다. 세계인과 접촉하면서 우리 현실과 비교하고 보니 많이 모자라고 불만이다. 닫힌지금도 “우린 행복합니다” 다. 안목이 높아지면서 기대 수준도 덩달아 올라갓다. 우리의 상향 의식도 끝이 없다. 해서 발전도 빠르지만 또 그만큼 불만도 크다. 신문을 펼치기도 겁나고. 그래서들 떠나야겠다는 거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생긴 것도, 그리고 떠날 실력이 될 수 있는 것도 큰 축복이요 혜택이다. 불만이, 혹은 억울한 일이 있다고 다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실력이 있어야 한다. 재력이든 기술이든, 혹은 그만큼 배운 게 있어야 떠날 수 있다. 나라가 그만큼 우리를 길러주었기 때 문이다. 그것만큼 그는 혜택을 받은 사람이요, 빚을 진 사람이다. 비록 그의 욕심만큼 이 나라가 잘해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는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러기에 떠날 실력을 갖춘 게 아니냐, ‘떠날 때는 말없이’. 문득 노래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핏대를 올려 욕하진 말자. 남아있는 자도 여기가 지상 낙원이라 믿어서는 아니다. 미련일 수도 있고,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이대로 부대끼며 이 땅에 남아 여길 지켜야 한다는 그런 사람도 없지 않다. 

 알량한 애국론을 펴자는 뜻은 아니다. 이젠 세계가 무대다. 어디든 가야 한다. 다만 나를 키워준 이 땅에 등을 돌리고 떠나진 말자는 거다. 어느 날 이국 하늘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고 눈물이 날 때, 그리고 문득 고향의 옛정이 그리울 때 설레는 가슴을 안고 돌아올 고국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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