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형박사 Oct 17. 2018

화려함을 쫓는 무지개 증후군

젊은 날, 그런 꿈도 없다면 그게 어찌 젊음이랴.

『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스타냐, 엘리트냐. 우리 젊은이 눈엔 오직 이 두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스포츠 · 연예계의 스타가 되든지, 아니면 서울대를 거쳐 엘리트가 되든지. 그 이외 어떤 길도 눈에 드는 게 없다. 그 집착은 병적이다. 이 다양한 사회, 수많은 갈 길 중에 왜 그 길밖에 보이지 않는지. 다른 건 아예 거들떠볼 가치조차 없는 중증의 시야 협착증에 걸려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과외 열풍, 아니면 학교도 포기한 채 스타의 꿈을 향해 광적인 돌진이다. 부모도, 사회도 모두 들떴다. 매스컴의 요란한 팡파르에 현혹돼 모두가 집단최면에 걸린 것도 같다. 이제 이런 열풍은 우리 시대의 심각한 사회 병으로 만연된 느낌이다. 하긴, 될 수만 있다면 누가 말려. 인기 · 돈, 화려하다. 이게 싫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확률이다. 이건 기적 이상의 기적이다. 우선 열병을 식히고 냉철한 눈으로 자기를 보자. 

엘리트? 좋다. 하지만 공부 재주부터 확실히 타고나야 한다.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 천재라지만 우선 그 1%부터 갖춰야 한다. 이것 없이는 아무리 노력해야 도로 아미타불이다. 타고난 공부 재주만으로도 물론 안 된다. 하려는 의욕, 참고 노력하는 끈기, 그리고 건강이 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걸 다 갖추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서 천재다. 설령 3수, 4수까지 해 힘들여 그 관문을 뚫었더라도 대학을 무사히 마친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게 바동거려서야 몇 해를 견딜 건가. 해서 명문대일수록 노이로제 환자들이 많다. 간판에 현혹돼 마음에도 없는 전공을 하다 보면 그 갈등은 평생을 괴롭힌다. 그 간판으로 취업도 쉽지 않거니와 된들 조직에 적응력이 없어 퇴출이다. 

 진짜 천재는 그렇게 바동거리지 않는다. 평소에 놀 것 다 놀고 슬슬 하다가 결정적 시기가 오면 바짝 죈다. 그래도 거뜬히 합격이다. 그럴 여유가 있어야 폭넓은 교우, 교양도 쌓고 인간 수업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천재다. 

 연예계도 다르지 않다. 재능도, 끼도, 천부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사람을 매료하는 마력, 눈물겨운 노력, 그리고 운까지 겹쳐야 한다. 

어느 하나가 부족해도 별 따긴 글렀다. 노력만큼의 보수가 돌아가지 않는 게 연예계의 생리다. 주변에서 서성이다 피지도 못한 채 시들어 가야 한다. 어쩌다 잠시 반짝 빛날 수도 있다. 이것도 대단한 행운이다. 하지만 정말 잠시다. 유성처럼 흘러 까맣게 사라진다. 연출 · 감독 · 제작진 눈에 들게 비위도 맞춰야 한다. 자존심 · 비굴도 삼키고 온갖 음모와 음해도 견뎌내야 한다. 이건 죽음의 행진이다. 

스포츠계도 물론 다르지 않다. 천부적 소질과 피나는 노력, 이건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난 장훈 선수와 악수한 적이 있다. 그의 손바닥이 장작개비 그대로다. 이게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이다. 어디 이것 만이랴. 운도 따라야 한다. 운 좋게 주전 자리를 차지해도 슬럼프, 부상, 벤치를 지켜야 하는 아픔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긴 실력 없으면 가차 없이 쫓겨나야 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잘 견뎌도 길어야 10년, 프로의 활동 기는 정말 잠깐인데 후보 명단에도 못 끼어 마냥 기다린다고 될 일도 아니다. 

 화려한 무대, 스포트라이트, 열광적 환호 등 무지개를 좇는 건 좋다. 젊은 날, 그런 꿈도 없다면 그게 어찌 젊음이랴. 문제는 기적 같은 확률이다. 언젠가 꿈을 접고 서성이던 무대를 떠나야 하는 날, 그 참담한 심경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실의, 절망, 좌절, 의욕상실, 우울, 자살까지 완전 녹초다. 무거운 짐을 메고 달려온 고갯길. 이윽고 탈진, 완전연소 증후군이다. 더 탈 게 없다. 한 발짝 옮겨놓을 힘도, 의욕도 없다. 

 그래도 인간은 모진 것, 얼마간의 절망적 방황이 끝나면 다시 꿈틀 거린다. 

하지만 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10대, 20대.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결정적 시기에 무지개만 쫓아다녔으니 배운 게 있나, 익힌 기술이 있나. 눈만 잔뜩 높아 손에 잡히는 일이 없다. 참으로 막막하다. 이제 꿈은 깼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이처럼 우리 주변엔 이무기도 못 돼 좌절의 늪에 빠진 젊은이가 너무 많다. 어릴 적부터 세상을 바로 보는 눈,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천재 망상, 재능 망상증의 감별도 할 수 있는 냉철한 눈을 길러야 한다. 무지개의 뒤안길에 기다리고 있는 눈물과 좌절의 깊은 수렁을 볼 줄 아는 혜안도 길러야 한다. 세상엔 참으로 길이 많다. 이걸 두루 볼 수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모두들 이 나라를 떠난다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