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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끔 부모님의 모습 중 어느 하나가 나를 못 견디게 괴롭게 할 때가 있다. 사실 내가 바라는 건 아마 아주 작은 거였다. '아, 그래?' 하면서 내 말을 아주 일부만이라도 인정해주고 넘어가 주면 좋겠는, 아주 작은 포용이면 되었다. 나의 생각과 말에 '아 너는 그런 생각을 했구나, 내 생각은 이런데. 그런 식으로 느꼈구나. 그랬을 수 있지.'가 아니라 '그건 아니야'라고 먼저 말해버렸던, 내 말을 부정하고 시작했던, 혹은 벽처럼 튕겨냈던 부모님의 모습은 내가 풀어야 할 가장 깊은 골이다. 생각하면 숨이 턱 막혀온다. 단 한 문장도 더 보태고 싶지 않아 진다. 인상을 쓰고 있는 내가 느껴진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인정 욕구가 센 어른으로 성장했던 것은 단 한 차례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의 사고도 틀린 것이며 나의 감정도 틀린 것이면, 도대체 무엇이 맞는 건지, 내가 가지는 생각과 감정이 나는 헷갈려졌고, 그런 나를 마주하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분노가 이글이글 끓고 있었다.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으니 내가 먼저 인정해 주고 넘어가는 것은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인정받지 못해서 인정하지 못한다는 말도 핑계에 불과하고 찌질해서 지우고 싶어 지지만, 내 안 깊숙한 곳에서는 그런 마음이 분명히, 아주 보란 듯이 자리하고 있다. '주지 않았잖아. 나에게 그건 한 번도 안 줬잖아.' 눈을 부릅뜨고 가끔은 아이처럼 응애응애 울면서. 내 안에는 아직도 다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그곳이 건드려지면 들키고 싶지는 않아서 이상하게 행동하고 만다. 결국에 소리 높여 우겨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나 자신도 그토록 힘들어했던 부분이었는데,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면, 나 자신을 긍정해주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상처를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가끔은 내가 몹시 싫어진다. 상대가 부모라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오히려 부모님과 그런 이유로 대립을 하게 되면, 어른과 아이는 거울이 되어 누구 한 사람 질 수 없어 팽팽하다. 대화라는 게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닌데, 감정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는 게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닌데. 생각만 해도 숨이 턱 턱 막혀온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위대한 부모라고 생각하고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한 사랑이다. 이 상처를 잘 들여다봐야겠다. 잘 들여다보고 잘 토닥여줄 거다. 누가 위로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치유해 낼 것이고 훗날 내가 더 커져서 아무 거리낌 없이 부모님을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인정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 그대로 내가 인정해주고 싶고, 목소리가 커져도 그러신가 보다고 웃으며 받아들여주고 싶다. 이제 한 없이 내가 지켜주고만 싶은데. 미안하고 고맙고 아직은 조금 밉기도 하고. 하지만 아주 영원히 사랑하고.
2. 너무 힘을 주면 모든 게 우스워지고 만다. 힘을 줘야 할 때와 빼야 할 때를 순간순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자기에서 빠져나와 전체를 볼 수 있어야만 하겠지. 전체 안에서 흐름을 파악하고 내가 관여할 부분과 관여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기가 막히게 파악해서 아주 적재적소에서 딱 필요한 만큼 적당량만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3. 어쩌면 시절 인연이라는 게 존재하는 건, 사람이 시기별로 아주 많이 변하기 때문인가 보다. 사람은 참 요상하게도 시기별로 한 꺼풀 성장하기도 하고 움츠러들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모두 다 나아감이겠지만 시기별로 사람이 원하는 에너지의 방향이 다른가보다. 한 시기에 누군가와 누군가의 에너지의 흐름이 맞았기 때문에 서로 아주 격렬하게 무언가를 나눌 수 있었던 거라면, 그 인연이 정말 시절 인연에 그쳤다고 한들 그렇게 아쉬울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