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영진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영진이가 공부를 잘 못해서 부모님은 걱정이다.
"영진아! 아빠가 동화책 선물 사왔다. 이거 읽으면 재밌고 학교 공부에도 도움이 된단다."
하지만 영진이는 기쁘지 않았다. 책 읽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애가 어려서 책 읽기 싫어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젠 3학년인데도 책을 멀리하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책이 재미가 없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 머리가 나쁜가 봐. 그리고 애들이 내 이름이 남자 이름 같다고 놀려." 영진인 토라졌다.
"할아버지가 좋은 이름이라고 지어준 거야. 맘에 안들면 나중에 개명시켜 줄게."
그런데 얼마뒤 학교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네! 난독증요?" 엄마는 머릿속이 블랙홀이 되었다.
난독증을 치료하는 동안 아빠는 직접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치료하면 금방 낫는단다. 절대 영진이 머리가 나쁜 게 아니었어. 오히려 내가 머리가 나빠서 이렇게 폰에다 스케줄 알람 맞춰 놓잖아." 아빠는 폰을 열어 스케줄 표시해 둔 걸 영진이한테 보여주었다.
"근데 치료하면 아빠가 더이상 동화책 안 읽어줄거잖아. 난 아빠 목소리 듣는 게 더 좋아." 영진인 아빠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래도 계속 읽어줄게. 영진이만의 오디오북이지. 하하!"
그러던 어느 날 슬픈 소식이 전해진다. 아빠가 폐암에 걸리고 말았다. 그것도 폐암 말기!
아빠는 멍한 표정으로 미이라처럼 굳어버렸다. 자신의 죽음보다 영진이한테 동화책을 읽어주지 못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아빠는 병원에 입원했다. 영진이는 아빠가 더이상 동화책을 읽어줄 수 없자 맥빠진 표정이었다.
아빠 장례식 후 엄마는 남편의 유품을 정리했다. 휴대폰이 눈에 띄었다.
"아빠 휴대폰이다!" 영진이는 달 뜬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때 알람이 울렸다. 스케줄 알람이었다.
"어, 심청전 녹음?" 영진이는 오늘 스케줄 제목을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는 얼른 스케줄 알람을 훑어보았다. 얼마전부터 흥부전 녹음, 춘향전 녹음, 콩쥐팥쥐 녹음 등이 날짜별로 맞춰져 있었다.
엄마는 휴대폰 녹음 앱을 찾았다. 집게손가락을 미세하게 떨며 조심스럽게 눌렀다.
녹음 목록에는 전래동화 제목들이 있었다.
맨 처음 흥부전을 눌렀다. 쉰 목소리가 들렸다.
“영진아, 아빠가 동화책 계속 읽어준다고 했지? 약속한 거 지키려고 지금 병원에서 녹음한단다. 우리 영진이만의 오디오북이야. 폐암 때문에 목소리가 안 좋아도 이해해. 내 마지막이자 영원한 선물이야.
옛날 어느 마을에 흥부와 놀부라는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옆에서 동화책 읽어주고 있어. 엄마!" 영진이 얼굴에 모처 생기가 너울거렸다.
엄마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거 아빠 생각날 때 들으면 되겠네. 네가 영원히 간직해." 엄마는 영진이에게 폰을 건넸다.
"네!, 엄마." 그후로 영진이는 가방속에 휴대폰을 항상 간직했다.
*아빠의 사랑은 무조건입니다.